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어제 "대선 공약의 취지는 살리더라도 경중을 달리할 수 있고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선거 기간에 너무 세게 나갔던 부분은 다시 한 번 차분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게 그 배경이다.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내놓은 대선 공약 가운데 무리한 내용이 없지 않다는 점을 고백하고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선거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지키는 게 원칙이고 또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당선 후 첫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재원이다. 불황으로 세금은 예상보다 덜 걷힌다. 박 당선인의 공약을 실천에 옮기려면 5년 동안 해마다 27조원, 모두 135조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증세 없이, 세출 구조조정, 비과세 축소 등으로 조달하겠다고 했다. 과연 가능할까. 새누리당이 새해 예산을 6조원 늘리자고 주장한 게 어렵다는 방증이다.
성장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공약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재정건전성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나라 형편을 고려해 실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세세하게 모든 공약에 집착하기 보다는 큰 틀에서의 방향을 지켜가겠다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새 정부 출범 전에 공약의 타당성을 재검토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행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장기과제로 돌려 다음 정부에서 완성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선 과정에서 여야는 정책대결을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전략적인 정치공세에 치중했다. 공약을 망라한 종합판은 선거일이 임박한 시점에서 나왔다. 마지막까지 정치권이나 유권자 모두 단일화와 지지율 추이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 과정에서 공약은 제대로 정밀하게 검증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
박 당선인은 인수위를 통해 공약을 다시 세세하게 짚어보기 바란다. 공약의 경중과 실행의 선후를 잘 가려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새 정부의 정책이 초기에 연착륙할 수 있다. 원칙과 신뢰를 중요시하는 박 당선인으로서는 공약을 손 보거나 번복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 실행하기 어려운 공약이 있다면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의 양해를 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대통령 약속의 무게는 후보 시절 약속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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