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올해 금융권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소비자보호'다. 금융권이 소비자를 도외시하고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소비자보호에 대한 관심은 그야말로 연쇄반응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금융감독원에 소비자보호처가 설치된데 이어 은행에는 고액자산가가 주로 이용하는 프라이빗뱅킹과 유사한 개념의 서민금융전담 점포도 생겨났다.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은 전국을 돌며 서민금융상담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올해에는 또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보험사에는 판매광고방송 규제, 연금저축 비교 공시 강화, 공시이율 체계 개편 등이 요구됐다. 이외에 사소한 내용까지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고객 위주의 제도 개선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앞으로 소비자보호가 금융권의 생존을 위해 유념해야 할 중요한 패러다임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완벽을 추구하는 금융권의 이 같은 변화는 과연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답하기는 쉽지 않다. 아직 금융소비자들의 인식이 제도 개선의 속도에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보험사기는 줄기는 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고 은행 창구에서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협박을 가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주택 집단대출을 얻은 차주들이 연합해 은행 대출이자를 갚지 않고 오히려 깎아달라고 요구하는 떼법도 여전히 성행한다. 서민금융에서는 저신용자들이 정부 보증을 믿고 대출금을 떼먹고 잠적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더욱 교묘하고 지능적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고객을 위해 제도를 바꿨음에도 정작 금융소비자들은 오히려 금융사의 건전성에 해를 끼치고 있는 셈이다. 하드웨어의 발전 속도를 소프트웨어가 미처 따라잡지 못해 발생한 문제다. 소비자보호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금융기관은 이것저것 제도 개선 여지를 끊임없이 살피는데 과연 소비자는 그에 상응하는 준비를 하고 있냐"는 한 금융회사 CEO의 발언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은행, 보험 등 금융기관에 대한 왜곡된 이해가 소비자의 정확한 인식을 가로막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돈을 취급하는 기관이니 이 정도는 봐주겠지'라는 생각이 떼법과 보험사기를 조장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어려운 서민을 대상으로 한 금융당국의 서민금융행사에서 '금융기관 올바르게 이해하기' 등의 프로그램을 넣는 것도 한가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소비자의 의식 수준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성과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경제의 핏줄인 금융이 잘 돌기 위해서는 소비자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금융 발전, 이제는 소비자가 답을 보여줄 차례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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