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공무수행 중 경찰관이 폭행을 당한 경우 가해자로부터 적정한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경찰공무원은 경찰병원에서 무상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정신적 피해나 후유장애로 인한 노동능력의 감퇴까지 국가가 보상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심준보 부장판사)는 이모씨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강등처분 및 징계부과금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경찰공무원인 이씨는 지난해 8월 성추행 신고를 받고 출동해 피의자인 강모씨로부터 폭행을 당하자 그를 공무집행방해죄의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파출소로 가는 순찰차 안에서 강씨는 또 이씨로부터 낭심을 가격당하는 등 폭행을 당해 경찰병원에 입원했다.
이씨는 남편이 직장에서 면직될까봐 찾아온 강씨의 아내로부터 합의금 3000만원을 받기로 하고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 후 강씨는 '이씨로부터 폭행을 당했음에도 일방적으로 거액의 합의금을 지급하게 됐다'면서 경찰청에 합의금 수령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접수했다.
이에 경찰서 징계위원회는 이씨가 '공권력에 항거하는 행위는 합의불가 원칙을 준수하고 그로 인한 손해는 추후 배상명령제도를 이용해 전보받으라'는 상부의 지시를 무시한채 강씨와 합의하고 합의금을 빨리 지급하지 않으면 강씨의 직장에 찾아가겠다고 말하는 등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의무 등을 위반했다며 이씨를 징계처분했다. 이에 이씨는 징계가 지나치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경찰공무원이라 해도 타인으로부터 상해 등 불법행위를 당해 재산적·정신적 손해를 입은 경우 이를 적정히 배상받을 권리가 있다"며 "원고가 상부 지시에 따르지 않은 것 자체는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강씨의 아내가 남편이 구속을 면하게 되자 이씨와 연락을 끊은 데 격분해 이씨가 그 부당함을 지적하며 합의금 지급을 독촉한 것은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고, 배상금액도 피해정도에 비춰 과다하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강씨가 합의 후 태도를 돌변해 이씨를 진정한 것은 교활한 가해자에게 경찰관이 농락당한 측면이 있는 점, 이씨가 31년간 성실히 근무해온 점 등에 비춰 이 처분은 징계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이씨가 공무수행과 관계없이 개인적 목적으로 강씨 아내의 주민조회를 동료직원에게 부탁한 것은 경찰 정보통신 운영규칙 위반으로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박나영 기자 boh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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