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장 잡일도 즐거워...증권 임원때보다 얼굴 펴졌네요
고등학교때부터 취미활동
인생 2막 고민할때 "이거다"
하루 11시간 노동에도 웃음꽃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이들이 “내가 진짜 원하는 일 하면서 마음껏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실천에 옮기는 이는 드물다. 24년 증권맨에서 테니스 전도사로 변신한 심정섭씨는 바로 이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최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남테니스장에서 만난 심씨는 소위 뼛속까지 '증권쟁이'이었다. 올 초까지만 해도 하나대투증권에서 연금사업본부장(이사)으로 근무했다. 증권사 임원이던 그가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테니스장 경영에 뛰어든 게 이달로 6개월째. 지금 그는 직원 10여명을 거느린 어엿한 '사장님'이다.
“사직서를 제출하자 회사에서 다들 말렸습니다. 임원 자리 그만두고 어디 가느냐는 거죠. 지금은 다들 연락 와서 부럽다고 합니다. 하하.”
연봉 높기로 소문난 금융권에서도 그는 잘 나가는 임원이었다. 알짜배기 지점장 자리를 거쳐 임원 자리에 올랐지만 마음 속 공허함을 감출 길이 없었단다.
“점점 제 역할이 줄어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직급은 임원이지만 연말만 되면 실적 스트레스에 괴로워하는 선배들 보면서도 많은 생각 했고요. 늦게나마 진짜 내 삶을 찾아보자는 결심을 한 거죠.”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테니스를 즐겼다. 재직 때도 틈만 나면 근처 테니스장으로 달려가 스트레스를 풀었다. 두 번째 삶을 고민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 역시 테니스였다.
사업 아이템을 찾은 후에도 막상 회사를 그만두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고민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수입이 크게 줄어들 터였다. 그는 “수입이 줄면 그만큼 소비를 줄이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회사를 나왔다. 어찌나 고심을 했는지 당시 몸무게가 7~8㎏가량 빠졌다고 한다.
가족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가장인 심씨의 새로운 도전은 가족의 도움 없이 불가능했다. 처음에는 우려를 나타냈지만, 지금은 든든한 후원자가 바로 가족이다.
요즘 그의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사업을 시작하며 군 제대 후 처음으로 삽질을 해봤고 오전 7시께 출근해서 저녁 8시쯤 퇴근한다. 코트를 관리하고 고객과 상담하고 테니스를 가르친다. 사람이 몰리는 주말은 더 바쁘다. 예전에는 일주일 단위로 흐르던 시간이 지금은 한 달 단위로 흐른다고 했다. 그만큼 시간의 흐름이 빨라졌다. 그래도 피로함이 없다고 한다. 줄었던 몸무게는 다시 5㎏가량 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전혀 힘들지가 않아요. 비오는 날 새벽에 나와 코트를 관리하면서도 즐거운 마음뿐입니다.”
심씨의 테니스 사랑 덕분인지 그의 테니스장은 “테니스 치기에 제격”이라는 입소문이 났다. 근방에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테니스 동호회는 단골 고객이다. 근처 호텔에 숙박하는 외국인들도 짬을 내 테니스를 치러 오곤 한다. 특히 테니스 문화가 발달한 유럽 인사들에게 심씨의 테니스장은 빼놓을 수 없는 휴식 코스다. “유럽에서 테니스는 고급 스포츠입니다. 운동량이 많고 오락 요소가 충분한데도 우리나라서 인기가 덜한 것 같아 아쉽네요”라며 입맛을 다셨다.
심씨에게 눈길이 가는 이유는 그가 임원으로서 보장된 혜택을 모두 내려놓고 스스로 나왔다는 점이다. 차량, 법인카드, 높은 연봉 등 보통 사람들이라면 쉽게 포기하지 못할 당근들이다. 그 달콤함에 빠져 사람들은 “일 정말 못해 먹겠다”고 하면서도 한 해, 두 해 세월을 보낸다. 심씨는 그런 현실을 박차고 나왔다.
“달콤함에 빠져 좋은 기회가 와도 내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요한 건 모든 걸 백지로 돌려놓는 겁니다. 그래야만 뭔가를 잡을 수 있어요.”
심씨는 자신의 테니스장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정보교류의 장으로 만들 계획이다. 인생 이모작을 일구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심씨 본인이 잘 안다. 이모작 아이템을 가져와서 서로 의견도 나누고 조언도 하는 그런 장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은퇴 후 2모작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회사를 그만둔 이들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쫓겨 성급히 일을 벌이다 실패를 맛본다는 것이다. 그는 “한 2년 정도는 푹 쉰다는 생각으로 여유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퇴임할 정도면 최소한 20년 이상은 직장 생활을 했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10%인 2년은 쉰다는 생각으로 여유 있게 이모작을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친 그는 “꼭 운동하러 오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코트로 달려 나갔다.
이승종 기자 hana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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