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애널리스트를 아시나요.”
“증권 애널리스트는 알지만 스포츠 애널리스트란 말은 처음 들어 보는데요.”
어지간한 스포츠팬이라도 이런 문답이 오갈 수 있다. 기사 머리에 소개할 스포츠 관계자가 있다. 이 관계자의 직함은 대한스포츠애널리스트협회 (회장 김성근) 고문. 아직 스포츠 애호가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단체인데다 고문이라는 직책이 더해져 시쳇말로 스포츠 ‘광팬’이라고 해도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을 터이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원자력공학과(원자핵공학과 전신) 출신의 한국 프로야구 1호 기록원, 국내 유일의 스포츠 기록 통계 전문회사 스포츠투아이의 전무이사인 박기철 씨가 그 주인공이라고 하면 어지간한 야구팬들은 그가 한국 스포츠 기록 통계 발전을 위해 지난 6월 창립한 협회의 고문을 맡을 만하다는 걸 인정할 것이다.
1970년대에 외국 스포츠계의 동향을 체크한 스포츠 관련 매체로는 일간 신문과 방송 외에 월간 축구(오늘날의 베스트 일레븐), 오래전에 폐간한 월간 스포츠 그리고 주한 미군 방송인 AFKN 등이 있었다. 1975년 스포츠 전문 주간지였던 주간 스포츠의 창간은 이런 환경에 놓인 스포츠팬들에게는 단비와 같았다. 창간 취재기자였던 야구의 김창웅(한국야구위원회 초대 홍보실장), 축구의 이의재, 복싱의 한보영, 농구의 이동웅 등은 당대 최고의 필진이었다. 나라 안팎의 스포츠 정보를 두루 취급했다.
글쓴이는 1979년 막내 기자로 주간 스포츠에 합류했다. 당시 주요한 외국 스포츠 정보 수단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와 미군의 성조기신문이었다. SI지를 인용해 1980년대 초반 프로 복싱 헤비급 판도를 특집으로 보도했던 일은 초보 기자 시절 가장 큰 기쁨이었다.
SI지의 열렬한 독자였던 문상열 전 스포츠서울 미국 특파원은 팬이었던 시절 주간 스포츠에 전화를 걸어 미국 스포츠와 관련된 잘못된 내용을 지적했다. 물론 지금은 많은 스포츠팬들이 문상열 기자의 수준을 자랑한다. 실시간으로 전 세계 스포츠 뉴스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팬의 스포츠 전문가화가 이뤄진 것. 한 발 더 나아가 스포츠 기록 통계 분석에 일가견을 가진 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2년 야구, 1983년 축구와 민속 경기인 씨름의 프로화 그리고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전 종목에 걸쳐 경기력의 급속한 향상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스포츠 기록의 통계와 분석은 큰 역할을 해냈다.
야구는 1960년대 초반 오늘날 프로 야구에서 채택하고 있는 ‘한국식 기록법’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식 기록법’의 창안자는 1980년대 한국야구위원회 사무차장으로 일한 이호헌 씨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야구 해설을 하던 이라고 하면 아마 올드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축구는 1970년대 초반 이미 선수들의 이동 거리와 패스 경로를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시도가 있었다. 결과물은 월간 스포츠에 소개되기도 했다. 월간 축구는 그 무렵 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를 ‘21세기형 선수’로 표현했다.
농구와 배구는 체계화된 기록법이 있었던 데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중반 각각 프로리그로 전환되어 더욱 세밀한 기록과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이른바 4대 인기 종목 외에도, 예를 들어 유도의 경우 1980년대에 이미 체급별로 전 세계 유명 선수들의 기술 분석이 자세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박 전무는 SKBR(Society for Korean Baseball Research)이란 야구 기록 통계 관련 모임을 만들었다. SABR이란 단체가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도 시도해 보면 기록에 대한 보급과 야구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야구 기록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었다. 박 전무의 설명에 따르면 조직은 다소 어설펐으나 기록 분석집을 두 차례나 발간하는 등 나름대로 활동했다. 그러나 주력 멤버들이 언론사나 구단으로 취업하면서 흐지부지됐다고 한다. 박 전무는 그때보다 야구 기록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기에 이른 시일 안에 SKBR을 재건해 보겠다고 한다.
스포츠가 발전하는데 기록과 통계 그리고 이를 분석하는 일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은 대한스포츠애널리스트협회 홈페이지(www.koreasa.or.kr)에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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