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6조원대 웅진그룹 키워냈지만 한 순간에 추락···성공원동력이던 M&A에 결국 발목잡혀
[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샐러리맨 신화'가 좌초했다. 월급쟁이로 시작해 중견 그룹을 일궜던 성장 엔진도 급기야 멈춰섰다. 그의 성공 방정식이던 M&A에 결국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윤 회장은 매출 2억원 미만의 소기업을 30여년 만에 재계순위 32위까지 올린 자수성가형의 기업인으로 평가받아왔다.
1945년 충남 공주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건국대 경제학과 졸업 후 1971년 한국브리태니커의 백과사전 외판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입사 한달 만에 국내판매 1위, 1년 만에 세계 54개국 세일즈맨 중 판매왕을 차지하는 등 방문판매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35세가 되던 해인 1980년 웅진출판(현 웅진씽크빅)을 설립하면서 경영자로 나섰다. 탁월한 사업 감각을 앞세워 과외금지 시대에는 테이프 교재와 학습지로 대박을 터뜨렸다. 1989년에는 웅진코웨이로 정수기 시장에 뛰어들었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가계 부담이 적은 렌털 사업을 처음 도입해 대박 신화를 이어갔다.
지난 32년 간 생활환경가전, 건설레저, 식품, 금융, 소재, 태양광 사업까지 15개 계열사에 매출 6조원대의 그룹으로 성장시키며 승승장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극동건설, 새한(현 웅진케미칼), 타이거월드(현 웅진플레이도시), 서울저축은행도 인수했다. 하지만 승자의 저주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가 웅진왕국을 꿈꾸며 야심차게 인수한 극동건설과 서울저축은행은 그룹 자금난의 원인이 됐다. 극동건설에는 인수금 6600억원을 비롯해 정상화를 위해 44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추가로 지원했지만 회생에 실패했다. 서울저축은행에도 지금까지 3000억원을 투입했지만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06년부터는 웅진에너지와 웅진폴리실리콘을 설립하며 태양광산업에 진출했다. 태양광산업이 그룹의 미래 먹거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회장의 이런 선택은 그룹의 재무사정을 크게 악화시키는 꼴이 됐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웅진에너지와 웅진폴리실리콘의 경영상태는 적자에서 허덕이고 있다.
윤 회장은 그룹의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웅진코웨이를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매각했다. 웅진폴리실리콘도 매각을 추진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웅진홀딩스의 기업회생 신청으로 MBK파트너스와 진행 중이던 웅진코웨이 매각도 중단됐다. 윤 회장은 기업회생신청이라는 선택을 하면서 그룹의 회생을 기대하고 있다. 법원에서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웅진씽크빅 등 우량 계열사의 주식을 팔아 자금 조달을 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철저하게 비용을 절감해 기업 회생과 채권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채권자들은 물론 5만여명의 웅진그룹 임직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회장의 부인 김향숙씨가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 신청 직전인 24일과 25일 이틀간 보유 중인 웅진씽크빅 주식 4만4781주를 모두 처분하는 등 친인척의 모럴헤저드도 도마에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윤 회장이 극동건설을 인수한 것이 그룹의 재무사정을 악화시킨 결정적 원인이 됐다"며 "결국 극동건설이 150억원 규모의 만기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나면서 매출 6조원대의 웅진그룹도 해체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김대섭 기자 joas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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