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지난 6월 보건복지부는 43개 제약사를 '혁신형 기업'으로 인증했다. 기술력이 우수해 글로벌 제약사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뽑았다. 이들에 대해선 세금우대, 약가우대 등 정부돈이 투자된다.
그런데 인증 3개월이 다 되도록 취소 요건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된 혁신형 기업들이 14곳이나 등장했기 때문에 취소 요건은 민감한 이슈로 떠올랐다.
'윤리경영' 부문은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 때 10% 배점으로 작용했다. 일각에선 리베이트를 주다 걸렸어도 10% 감점되는 것이니 인증 자체를 취소하는 것은 과하다는 목소리도 있으나 이는 사리에 맞지 않다.
애초부터 기술력 있는 기업을 뽑는 데 '윤리'라는 잣대를 들이댄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에 위해행위를 한 기업에게 세금을 들여 정부가 지원할 순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리베이트는 제약회사의 성장성을 저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약값을 올리며 효과와 안전성에 입각해 의약품을 투여받을 환자의 권리를 침해한다.
또 리베이트라는 악습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는 것은 글로벌 신약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와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런 제약사를 지원하는 것은 정부돈으로 기업주 배만 불리는 꼴이다.
2년전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됐고 이 후 몇 번의 '자정선언'도 있었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에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윤리경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도 정부에 전했을 것이다. 앞에선 자정을 외치고 뒤에선 리베이트 장사로 재미를 보고 있었다니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사기행위를 한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취소냐 경고냐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놓인 일부 리베이트 제약사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선처'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는데 이는 매우 파렴치한 일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복지부는 10월 5일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전 혁신형 기업 취소 요건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공정함이 최우선 기준이겠으나 엄단 의지도 동시에 보여야 할 것이다. 리베이트 제약사로 머물 것이냐 글로벌 제약사를 향한 경쟁에 뛰어들 것이냐 양자택일의 기회는 이미 여러 번 있었다. 이제 와서 '앞으로 하지 않을테니 용서해달라'는 말은 더 이상 믿기 어렵다.
우리는 시험 시간에 부정행위를 한 수험생을 불합격 시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부정행위로 얻은 점수를 제외해도 여전히 합격점을 만족시키는 학생도 있을 테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더욱이 상습 부정행위자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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