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일본 도쿄 긴자거리에 있는 애플매장에는 지난주부터 아이폰 5를 사려는 고객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정식 출시일이 21일 오전 8시였는데 이날 새벽에는 500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이런 모습은 본토인 미국이든 우리나라든 전 세계에서 비슷하게 연출된다. 지금은 타계한 스티브 잡스가 대형스크린과 마니아들 앞에서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새 제품을 선보이던 프레젠테이션은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됐고 벤치마킹의 모델로 자리잡았다.
지난 19일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출마 선언식은 아이폰 현상의 데자뷔 같았다. 오후 3시 회견에 앞서 수백여명의 취재진과 지지자가 오전부터 진을 쳤고 오후3시 회견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그는 "이제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명을 감당하려고 한다"며 "저는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국민의 열망을 실천해내려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신문, 방송, 인터넷이 들끓었고 전국민에 회자됐다. 지지부진했던 지지율도 뜀박질했다. 아주 성공한, 준비된 마케팅이다.
이를 보고 새누리당 사람들은 대선주자들을 상품에 비유해 평가한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신상(신상품의 속어)이고 박근혜는 구제품"이라는 것이다. 정치경험으로봐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가장 오래됐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임명직 말고는 선출직이 사상구 지역구 당선이니 길게 잡아야 1년도 안된다. 안 후보는 가장 많이 뜸을 들이고 가장 늦게 대선출마를 선언한 가장 최신의 신상품이다.
안철수라는 상품은 신상인 데다 전혀 다른 상품이다. 그는 의사, 벤처기업 CEO, 대학교수, 인기저자와 강연자, 젊은층 멘토로 정치 외에서 일가를 이뤘다. 처음에는 "정치는 제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고 했고 대권주자로 거론된다고 하자 "당혹스럽다"고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정치참여의 빗장을 조금씩 열었다. 그의 지지율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어 안철수 현상이 나타났다. 노빠(노무현추종세력)처럼 안빠도 불어났다. 그의 입에서 "대선출마"라는 말이 나온 적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마침내 상품이 출시됐고 2040세대를 중심으로 한 고객들에게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물론 비록 구제품이지만 박근혜라는 상품도 잘 나간다. 고객층이 폭넓고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끊임없이 버전을 업데이트해 나가며 혁신을 해왔다. 문재인이라는 상품은 출시 이전에 내부적으로 치열한 경쟁과 테스트를 거쳐 나와 인기를 모았다.다만 타깃고객이 비슷한 안철수라는 상품의 등장으로 최근에는 다소 빛이 바랜 상황이다.
박-문-안 세 상품에 대한 고객의 최종선택은 12월 19일에 결판이 난다.
지금은 시장의 초기로 결과를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스펙과 품질로는 누구도 90일을 버티기 어렵다는 점이다. 박근혜ㆍ문재인 후보는 각각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워야하고 두 후보 모두 당내에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악재를 잠재우고 끊임없는 쇄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안 후보는 마냥 신선함과 착함만으로 승부해선 안되고 모든 현안에 직접 입장을 밝혀야하며 전무하다시피한 국정철학과 비전, 공약의 공란을 채워넣어야 한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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