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평생 동안 지켜야 할 신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이 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공자는 "그것은 서(恕)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답했다. 논어(論語)에 등장하는 이 유명한 구절은 애경의 독서경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독서경영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독서와 토론이 핵심이다. 회사에서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직원들이 잘 따르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얘기다. '직원들의 시각에서 독서경영을 추진하자'는 뜻에서 애경은 직원들이 직접 독서경영을 계획하고 실행하도록 했다. 각 사업 부문별로 대리ㆍ과장급 직원들이 1명씩 모인 '주니어보드(junior board)'를 통해서다.
주니어보드란 과장급 이하의 직원들 가운데서 젊은 실무자들을 선발해 꾸린 청년중역회의를 뜻한다. 기존의 임원회의나 중역회의와는 별도로 회사의 중요 안건이나 문제를 제안ㆍ토의ㆍ의결하게 하는 제도이다. 애경의 주니어보드는 '독서경영'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꾸려졌다. 때문에 주니어보드의 목표 역시 '애경을 세계에서 독서경영을 가장 잘하는 기업으로 만들자'로 잡았다.
◆직원 평가시 독서활동도 인정= 주니어보드의 멤버 8명은 매달 정기적으로 모여 독서경영의 아이디어를 나눈다. 또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활동상황을 공유하며 점검한다. 임원진의 결정이 상명하달식으로 내려오는 대신 각 부문별로 대표성을 띠는 젊은 직원들이 모여서 독서경영 활동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주니어보드에서 내놓은 계획은 인사팀과 1차 협의를 거친 다음, 바로 부문장이나 사장에게 보고된다.
연구생산SCM부문의 곽대환 과장은 "독서를 강요하기보다 자유롭게 활성화시키는 것이 주니어보드의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마케팅부문의 김은수 대리도 "내가 하기 싫은 걸 다른 직원들한테 하자고 할 수 없으니 더욱 신중하게 판단하게 된다"며 "직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만큼 현장 상황을 고려한 정책이 나온다는 것도 장점이다. 관리부문의 박종수 대리는 "본사, 연구소, 공장 등으로 사업장이 분산돼 있고 각자 하는 일도 다르지만, 각 부문별로 1명씩 주니어보드에 참여해 의견을 모으다보니 부문별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다"며 "최대한 많은 직원들이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2008년부터 주니어보드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애경의 독서경영도 틀이 잡혔다. 이에 사측은 주니어보드의 활동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애경에서는 2010년부터 전 직원이 모두 참여하는 '독서릴레이'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조직의 가장 작은 단위인 파트별로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해 함께 읽고 토론하는 독서포럼을 진행한다. 부문별ㆍ파트별로 돌아가면서 진행되다보니 한 직원이 1년에 2번 정도 참여해 부담도 적은 편이다.
주니어보드가 제안해 채택된 '역량 필독서' 제도는 올해부터 시작됐다. 직원들은 역량 강화를 위해 선정된 필독서 목록 중 3권 이상을 읽고 감상문을 내야 한다. 곽대환 과장은 "직원평가 시 역량평가항목에서 독서활동을 인정해주기 때문에 평가와도 간접적으로 연계시켰다"고 설명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리딩으로 리드하라', '생각 버리기 연습', '프레임', '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 등의 책이 필독서로 선정됐다.
◆"독서 위한 휴가 떠나요" = 애경은 자발적인 독서문화 정착을 위해 '독서포인트제'와 '마일리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에게는 책을 구입할 수 있는 독서포인트가 연간 16만 포인트 지급되고, 독후감을 작성하거나 다른 직원의 독후감에 댓글을 달면 추가로 포인트를 지급한다. 곽 과장은 "책을 읽고 독후감 2편을 남기면 1권의 책을 다시 구입할 수 있는 포인트를 준다"면서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비로 책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의 독후감을 모아 '생각을 나누는 북카페'라는 책을 엮어내고, 우수 독후감을 뽑아 시상하는 것 역시 주니어보드의 일이다.
독서경영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수시로 점검하고 있는 주니어보드는 올해 하반기 새로운 제도를 회사에 제안했다. 일명 '독서휴가제'다. 조선시대 세종임금이 시행했던 '사가독서제', 그리고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운영했던 '셰익스피어 베케이션'이 원조다. 곽 과장은 "독서를 위한 휴가를 줌으로써 직원들이 책 읽을 기회를 늘리고 책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해 개인과 조직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서휴가제는 매년 특정기간을 선정해 해당기간동안 진행하고, 개인연차 이틀과 유급휴가 하루를 더해 총 3일 동안 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주니어보드에서는 이를 위한 필독서 목록 26권도 만들었다. 곽 과장은 "독서휴가로 인한 성과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가 또 다른 과제지만, 앞으로도 직원의 마음과 눈으로 독서경영 아이디어를 계속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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