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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⑩별빛 쏟아지는 인왕산 자락, 하숙생 윤동주가 걷던 그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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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출판계와 공연계에 시인 윤동주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예술단은 이달 창작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을 쓴 베스트셀러작가 이정명씨는 윤동주의 삶을 모티프로 한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을 내놨다. '청년 시인 윤동주의 생애 마지막 1년, 차가운 감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라는 의문을 품고 집필하기 시작한 이 소설책은 현재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인기를 끌고 있다. 윤동주가 우리 곁을 떠난 지 70여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그는 고뇌하는 순수한 젊은이의 모습 그대로 연출가와 소설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서울스토리]⑩별빛 쏟아지는 인왕산 자락, 하숙생 윤동주가 걷던 그 언덕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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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과 소설책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윤동주의 발자취를 따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으로 향했다.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청운공원에는 윤동주를 기리는 '시인의 언덕'이 자리 잡고 있다. 시인의 언덕 아래에는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윤동주 문학관'이 지난달 25일 문을 열었다.

윤동주와 청운동의 인연은 그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재학하던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시절, 그는 학교 후배였던 정병욱과 함께 종로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 송의 집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두 사람은 아침식사를 하기 전 집 뒤편의 인왕산 중턱까지 산책삼아 오르곤 했다. '별 헤는 밤', '자화상', 그리고 '쉽게 씨워진 시(詩)' 등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그의 대표작들이 이 시기에 완성됐다.


입구로 들어서면 정지용 시인이 윤동주의 유고시집 출간을 기념해 쓴 서문을 만날 수 있다. 1948년 31편의 시를 모아 간행된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실린 글이다.

'추운 동섣달 눈 속에 핀 꽃은/차가운 얼음 아래 헤엄치는 잉어는/비장해서 눈물겹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식민지 조국의 현실에 분노하며 모국어로 시를 쓰다가/비참하게 요절한 청년시인 윤동주의 인생 역시/비장해서 눈물겹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동섣달 핀 꽃처럼,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처럼'
 
'제1전시관'에 들어서면 추운 겨울 눈 속에 핀 꽃과 같았던 윤동주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시인의 집이라는 의미의 '시인채'로 불리는 이곳 전시실에서는 시인의 일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열한 사진자료와 함께 친필원고 영인본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명동 소학교 졸업사진부터 그의 장례식 사진까지 볼 수 있다.

고뇌에 찬 낙서가 가득한 친필원고도 눈에 띤다. 1942년 일본유학을 결심한 윤동주는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 히라누마로 창씨개명을 한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기 직전 '참회록'이라는 시 한편을 남겼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로 시작되는 유명한 작품이다.


그가 남긴 시 옆에는 '시인의 삶, 비애, 생(生), 생존(生存), 문학(文學), 모르겠다(不知道)' 등 단어들이 복잡하게 적혀 있다. 이 시를 쓸 당시 그가 느꼈던 죄책감과 자괴감 등이 글자들 사이에 녹아있는 듯하다.


아쉽게도 이곳에 전시된 원고들은 원본이 아닌 영인본, 즉 복제본이다. 윤동주의 유가족들이 시인의 육필원고와 유고(遺稿), 유품 등 일체를 그의 모교인 연세대학교에 영구 기증한 때문이다. 연세대는 기증을 계기로 윤동주 시인이 연세대 재학 시에 머물렀던 기숙사를 '윤동주기념관(가칭)'으로 확대 개편할 계획이다.


[서울스토리]⑩별빛 쏟아지는 인왕산 자락, 하숙생 윤동주가 걷던 그 언덕 윤동주 문학관의 제2전시실인 '열린 우물'.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해 열린 야외 정원으로 만들었다.

'제1전시실'의 가운데에는 그의 고향인 중국 길림성 명동촌에서 가져온 우물 목판이 놓여 있다. '우물'은 윤동주 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매개체로 우물은 곧 '성찰'을 뜻한다. 이 우물에 대한 기억은 그의 대표작 '자화상'을 낳았다. 이곳 문학관의 전체적인 테마도 '우물'이다. 제 1전시실을 지나면 물탱크를 개조한 '열린 우물'과 '닫힌 우물'로 이어진다.


'제1전시실'과 연결된 철문을 지나면 천장이 뚫려 있는 야외 정원인 '열린 우물'이 나온다. 문학관 설계 도중 발견된 물탱크를 윗부분만 개방해 그대로 활용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 풍경이 액자에 담긴 그림 같다. 물탱크에 저장됐던 물의 흔적이 벽체에 그대로 남아 있어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퇴적을 느낄 수 있다.


다시 이 정원과 연결된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깜깜한 방이 나온다. '열린 우물'과 대비되는 이곳은 '닫힌 우물'이라고 불린다. 물탱크를 그대로 활용했으나 '열린 우물'과 달리 윗부분을 개방하지 않아 사방이 막혀 있는 감옥 같다. 1945년 윤동주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후쿠오카형무소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윤동주는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던 1943년 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경찰에 검거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옥사했다.


철문이 닫히고 '닫힌 우물' 내부에 빛이 모두 사라지면 윤동주의 삶을 담은 짧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갑작스러운 어둠에 당황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깜깜한 우물 안은 침묵 속에서 숙연해졌다. 영상을 통해 시인이 살았던 시간으로 돌아가보니 '모자에 진 작은 주름 하나도 견디지 못한 사람, 영혼의 구김도 참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던 윤동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스토리]⑩별빛 쏟아지는 인왕산 자락, 하숙생 윤동주가 걷던 그 언덕 시인의 언덕에 오르면 윤동주의 대표작 '서시' 시비와 함께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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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가 배어 있어 눅눅한 물탱크에서 빠져나왔다면 문학관 뒤편에 위치한 '시인의 언덕'에 올라보자. 산길 굴곡을 타고 조금만 오르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다다른다. 산책길을 따라 걷다보면 멀리 북악산을 감상할 수 있고, 곳곳에 '서시', '슬픈 족속(族屬)'등 윤동주의 시를 새긴 시비(詩碑)도 만날 수 있다.
 

[서울스토리]⑩별빛 쏟아지는 인왕산 자락, 하숙생 윤동주가 걷던 그 언덕


'시인의 언덕'은 문학관이 개관하기 이전인 2009년에 조성됐다. 이후 2012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수도가압장을 개조해 '윤동주 문학관'이 탄생한 것이다. 가압장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윤동주문학관은 우리 영혼의 가압장이다. 세상사에 지쳐 타협하면서 비겁해지는 우리 영혼에 윤동주의 시는 아름다운 자극을 준다. 영혼의 물길을 정비해 새롭게 흐르도록 만든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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