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아파트 안전진단 통과'
필자 동네의 아파트에 얼마 전 걸린 현수막이다. 오랫동안 재건축을 하느니 마느니 시끄럽더니 결국 진행을 하는가보다. 주민들의 숙원사업이 풀렸으니 기뻐할 만하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섬뜩해진다. 안전진단을 통과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해당 건축물이 낡고 오래돼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다. 즉, 곧 무너질지 모르니 다시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축하할 일인가? 재건축 승인받기가 어려웠다는 것은 잘 안다. 그것이 해결되었으니 기쁜 마음 또한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본인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을까? 아무리 그래도 경축 현수막이라니….
우리나라의 안전불감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사고는 너무 오래 전이라 그렇다 치자. 지금은 많이 좋아졌을까? 필자의 생각은 '아직 멀었다'다. 미국에서 30년을 살다 최근 귀국한 교포 왈, 새벽에 서울에서 운전하다가 깜짝 놀랐단다. 차들이 건널목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너무 자연스럽게 지나가더라는 거다. 어디 새벽뿐이랴. 밤이든 대낮이든 차나 보행자가 없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는 우리 운전자들. 오죽하면 빨간 신호에 멈춘 차에게 냉장고를 선물하는 TV 프로그램까지 있었을까.며칠 전 그 프로그램의 PD는 한 강의에서 빨간 신호에 멈추는 차가 너무 없어서 촬영을 접을 생각까지 했다는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장이나 건설현장 치고 '안전' 구호를 외치지 않는 곳이 어디 있는가. 안전담당자도 다 정해져 있다. 문제는 구호에 그친다는 것이다. 머리에는 안전모를 쓰고, 몸에는 안전조끼를 입고, 입으로는 안전구호를 외치지만 정작 일할 때는 대충대충 '이 정도는괜찮겠지'가 다반사다. 당장 큰 사고가 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 거다.
반면 안전을 생명처럼 지키는 회사가 있다. 200년이 넘은 대표적인 화학회사 듀퐁. 그들은 회의나 교육 등 여러 사람이 모이면 모임 주재자가 반드시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건물 도면도를 보여주는 일. "자, 여러분은 지금 이곳 회의실에 있는 겁니다. 비상구는 이쪽 문으로 나가시면 바로 옆에 있습니다. 확인하셨죠?" 매일매일 근무해 비상구쯤이야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는데도 매번 확인을 한다. 왜? 안전이 중요하니까. 듀퐁의 신입사원 교재에는 이런 시나리오가 있다. '2명이 출장을 가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려는데 안전벨트가 한 명분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2대로 이동한다'다.비용이 아깝지 않냐고? 돈보다 안전이 더 중요하니까.
그들의 안전수칙은 책상 위 필통에까지 미친다. 볼펜이나 연필의 뾰족한 부분이 반드시 밑으로 가야 한다는 것. 만일 '위험하게' 위로 꽂아놓은 직원이 있다면 경고감이다. 아이도 아닌데 계단을 오르내릴 때 안전바를 잡지 않은 직원도 마찬가지다. 왜? 안전이 중요하니까. 너무한 것 아니냐고?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화학약품을 다루는 듀퐁의 입장에서 안전은 생명줄이다. 사업 초기 폭발사고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잃었던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안전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게 평상시 병적으로 집착해야 몸에 배고, 그래야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창원의 한 화학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있었다. 그때도 어김없이 등장한 말이 '안전불감증'이다. 한두 명의 사소한 실수로 대형 인명피해가 나고 재산피해가 났다. 모르긴 해도 그 공장에도 필시 안전 구호가 있었을 것이다. 명심하자. 안전은 구호가 아니다. 생명이자 습관이다.
조미나 IGM(세계경영연구원)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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