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폴리텍대학을 가다 | KT 과장에서 전기기능사로 다시 일어선 지경철씨
뒤늦게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고
또 즐겁게 일할 수 있어 보람이 크다.
-지경철
대기업 KT에서 선로기술과장으로 33년간 근무한 지경철(64) 씨. 58세 나이에 정년퇴직한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다가 전기기능사로 인생 2막을 개척했다. 하지만 재취업에 성공해 다시 일어서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퇴직 시니어들의 갈 곳 없는 비애가 절절히 묻어나는 그의 회고록을 공개한다.
퇴직을 하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무려 한 달 동안을 직장에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다시 회사에 나가고 싶은 바람이 무의식적인 일어났던 것 같다. “여보, 괜찮아요? 당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정신 좀 차려봐요” 아내의 걱정 반, 꾸중 반 소리를 매일 듣지 않으면 귀에 가시가 박힐 정도였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아내의 권유로 조용한 산사를 찾아다니며 마음을 추슬렀고 서울 근교의 산과 숲길을 걷는가 하면 독서를 통해 할 일이 없어진 공허함을 달랬다. 그리고 백수가 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남은 인생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면 지체없이 뭔가 행동해야 함을 깨달았다. 퇴직 전부터 나름대로 짜놓은 인생 2막 ‘플랜’ 가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30여 년 간 온실 속 화초처럼 안정된 공직에서만 지내온 내게, 온실 밖 세상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원래 꿈이었던 귀촌을 하기 위해 귀농귀촌 기관도 여러 번 방문했고 실제 귀촌자들도 만나봤지만, 내가 생각하던 이상향이 아니었다. 실제 귀촌자들 대부분이 현지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이가 육십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그것도 도시 토박이가 연고도 없는 시골에 정착해 사는 건 매우 힘들 거라며 주변에서 뜯어말렸다. 할 수 없이 귀촌을 포기하고 창업을 해볼까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열리는 창업 설명회라고는 다 쫓아다니고 상담을 통해 알아보니, 프랜차이즈 창업한 사람들이 1년 안에 쫄딱 망해서 퇴직금 날리고 가정 파탄 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그래서 창업도 패스. 그냥 취직을 해야겠다 싶어 일자리 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웬걸, 신체 건강하고 스펙 좋은 내가 입사를 지원하면 번번이 떨어지는 거였다. 아마도 7개월간 이력서를 100군데는 넣었나 보다. 면접도 수십 번 봤다. 다 떨어졌다.
구청, 시청 등 공공기관 일자리도 지원했지만 방송이나 신문에서 중장년층 일자리 창출에 핏대를 올리며 홍보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경력과 관련된 원하는 일자리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환경미화원, 경비원 등 단순직이 대부분이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기왕이면 내 적성과 맞는 일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퇴짜 맞는 공통된 원인은 결국 나이였다. 시니어 구직난이 심각하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모든 게 당황스러웠다. 섣불리 달려들지 말자.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한국폴리텍대학의 기능직 교육과정 모집공고를 우연히 보게 됐다. 모든 곳에는 전기가 필요하고 평범한 듯 보이지만 매우 전문적인 분야가 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전기기술자다. 오아시스에서 찾아 헤매던 물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그렇게 해서 전기과에 입학하게 됐고 1년을 이론과 실습 공부에 온통 매달렸다.
졸업 후 전문기술을 갖췄어도 나이 때문에 역시 취업이 쉽진 않았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내가 필요한 데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 인내심을 가졌다. 꾸준히 이력서를 냈고 드디어 한 회사에 합격했다.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 산들마을 4단지. 방황하던 내가 정착하게 된 새 일터다. 이곳에서 3년째 근무 중이다. 아파트 단지 내 공영시설과 주민 가정의 전기 설비를 관리하는 일을 한다. 연봉은 2500만원 정도. 업무가 힘든 편이지만 뒤늦게 한국폴리텍대학을 통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고 또 즐겁게 할 수 있어 보람이 크다.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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