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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만원 없어 283억원 처분한 '눈물의 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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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만원 없어 283억원 처분한 '눈물의 경매' 2204만원의 청구액을 해결하지 못해 경매시장에 나온 삼호사파이어호. 감정가는 283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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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황준호 기자] 부산 남외항에 적화톤수 1만3094DWT급 유조선이 수개월째 바다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 이 선박은 '삼호사파이어호'로 해적 공격으로 유명해진 석해균 선장이 소속됐던 삼호해운 소속 선박이다. 감정가 283억원 규모인 이 선박은 삼호해운이 법정관리 후 청산 절차를 밟음에 따라 청구액 2204만원을 변제하기 위해 경매시장에 나왔다.

경기침체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중소 해운·조선사들이 좌초의 늪에 빨려들고 있다. 소액 채무도 해결하지 못해 선박들이 대거 경매시장에 내몰리고 있다.


◆경매시장, 중소 해운·조선사의 무덤= 23일 대법원 경매법정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현재까지 경매시장에 나온 선박은 총 422척으로 집계됐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세계 경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2009년 선박 경매건수는 14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2010년 131건이 나왔으며 지난해는 95건이 경매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올해는 상반기간 54건이 새롭게 경매물건에 등록돼 지난해보다는 많은 물건이 경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세계 해운시장의 불황이 우리나라 해운 시황까지 이어졌다. 유가 폭등, 신조선 인도에 따른 선가 부담, 적자 누적 등도 악재로 작용했다. 이에 경매시장에 국내 중소 해운·조선사들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소액채무도 해결하지 못한채 경매시장에 배를 내놓고 있다.


◆2204만원 없어 283억 선박 경매로= 삼호사파이어호(8686G/T)의 경우 2008년12월께 진수된 선박(Tanker)으로 사용에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정관리 절차 등을 거치면서 매각 시기를 놓쳐 경매시장에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이어 감정가 140억2282만원 규모 삼호스피넬(4060G/T급)호도 청구액 2198만1212원을 해결하기 위해 삼호사파이어호와 함께 8일 경매일자가 잡혔다.


2천만원 없어 283억원 처분한 '눈물의 경매' 낙동강사업 현장에 정박 중인 준설선.

이번 정권에서 일자리 창출과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를 대비하기 위해 거금을 쏟아부은 4대강살리기사업 현장에도 준설선 한 척이 수개월째 강 위에 떠 있다. 4대강사업에 투입돼 준설작업을 진행했던 선박으로 보이며 1억2434만원의 청구액을 해결하기 위해 경매됐다. 지난 2월 감정가 6억1989만원에 첫 경매가 시작됐으나 유찰돼 현재 최저가 2억0312만원에 다음 경매를 기다리고 있다.


전남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에 위치한 여수해양선박수리소에는 '동춘페리'라고 적힌 배 한척이 수개월째 정박해 있다. 이 선박의 감정가는 128억원128억원이지만 경매 청구액은 4억6361만원에 불과하다.


이 선박은 1만2961G/T급 화물과 여객을 같이 실어나를 수 있는 국제화객선이다. 동춘항운이 속초-러시아 자르비노(훈춘)-블라디보스토크 노선에 투입했었다 하지만 동춘항운은 재정적인 문제 등에 따른 선박운항 장기중단으로 지난해 10월 사업면허가 취소됐다.


이 선박의 소유자는 파나마에 국적을 둔 해이포크마린아이엔씨(HAYFORK MARINE INC.)이며 채무자는 동춘항운으로 잡혀 있다. 여수해양선박수리소에서는 수리비 미납에 따른 유치권을 설정한 상태다. 선박의 감정가는 128억원이며 1회 유찰돼 오는 30일 89억6000만원에 경매되나 높은 가격에 낙찰은 힘들 전망이다.


대한통운도 7억2910만원의 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경남 고성군 동해면 장좌리 지오고성조선내 정박해 있는 선박진수용 플로팅 독(FLOATING DOCK, 부선 지엠에스 101해양호)을 경매에 집어넣었다. 감정가는 93억6248만원에 잡혔지만 30억6789만원에 낙찰됐다. 감정가 대비 3분의 1 수준에 낙찰됐지만 채권자는 물린 돈을 찾았다.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항에 계류 중인 케미칼운반선 로얄 임페리얼호(5019G/T)도 2억5248만원의 채무를 해결하지 못해 경매시장에 끌려왔다. 감정가는 53억366만원에 달하지만 유찰을 거듭한 끝에 지난 1월 23억9580만원에 낙찰됐다.


◆매각 힘들어 경매로?= 이처럼 소액 변제를 위해 수백억원 규모 선박이 경매로 나오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먼저 실제 임금채권 등 소액 채무를 변제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경매를 이용하는 상황이다. 또 선박 소유주나 관계자가 자산 처분을 위해 지인 등을 동원하는 경우다. 경매전문가들은 시황 등을 볼 때 자산 처분을 위해 경매시장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해운 시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중소 해운·조선사의 경우 일감이 없거나 비용이 많이 소모돼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곳이 많다"며 "신규 사업자들의 진출도 적어, 이들이 선박이나 기자재를 매각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의 하유정 연구원은 "자산을 현금화하기 위해 매각하거나 임대하는 방법 외에도 지인 등을 동원해 저당권을 설정한 뒤 경매에 넣어 현금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정 경쟁을 통해 선박의 경매 낙찰가격이 정해지고 매각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박 처분 수단 중 하나로 경매시장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2천만원 없어 283억원 처분한 '눈물의 경매'




황준호 기자 rep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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