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저희도 답답합니다. (요금을) 올리기로는 했으니까 적당한 선에서 정부와 합의를 보면 될 텐데 그마저 쉽지 않아요."
한국전력 관계자의 얘기다. 이사진의 의견 조율 실패로 지난 5일 두 번째 이사회가 무산된 직후다. 한전 이사회 멤버 간 의견이 엇갈리는 데다 소액주주가 도끼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어 인상률을 낮추는 것이 맘처럼 쉽지 않다는 뜻이었다.
실제 한전의 전기 요금 인상을 가장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집단은 가정주부나 식당 주인이 아닌 한전 주식을 산 투자자다. 상장사인 한전의 종목 게시판은 이미 전기 요금 인상과 관련한 소식으로 가득하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지난달 8일 정부에 거절당한 13.1% 인상률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인상안을 재심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둘러싸고 김중겸 사장을 비롯해 일부 이사진이 소액주주와의 법적 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써낸 수치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만큼 노력을 했지만 결국 정부가 퇴짜를 놓지 않았느냐"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의 상황은 이렇다. 최근 만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기획재정부와 정한 적정 인상률에 대한 안을 한전이 가져오지 않으면 아무래도 힘들다"고 말했다. 알려진 대로면 정부는 5% 안팎에서 전기 요금을 올려줄 의사가 있다. 하지만 두 자릿수 인상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물가 상승 우려가 있고, 산업계 반발이 심한 상황에서 한전의 손만을 들어주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이유다.
이처럼 전기 요금 인상률을 놓고 정부와 한전의 지루한 줄다리기는 '명분 싸움'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전 내부에서는 반드시 두 자릿수가 아니더라도 정부와 협의 하에 인상부터 하자는 목소리가 있다. 명분 쌓기를 그만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이 소액주주 14명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전례가 있어 한전 입장에선 쉽게 물러서는 모습을 보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소액주주의 압박은 한전 뿐 아니라 정부를 겨냥하고 있다. 한 소액주주는 "한전 사장은 물론 이사진과 나아가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장관까지 싸잡아 소송을 제기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전은 오는 9일 전기 요금 인상안을 둘러싼 이사회를 또 열 예정이다. 하나의 안건으로 한달새 세 번째 열리는 이사회로, 극히 이례적이다.
김혜원 기자 kim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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