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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선을 테마로한 젊은 작가들의 톡톡튀는 아트전시 '부채'展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26초

접선을 테마로한 젊은 작가들의 톡톡튀는 아트전시 '부채'展 이지영, Night scape, 잉크젯 프린트, 96×120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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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죽세공품 장인이 만든 500개가 넘는 부채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청록의 빛깔로 올 여름 더위를 순식간에 식혀 버릴 듯하다. 금빛 재료 바탕위에 석고를 붓고 긁어 스케치한 대형작품도 무언가 심상치 않다. 한강과 다리, 아파트가 보이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나룻배에 앉아 부채를 주고받는 두 선비다. 진나라 때 부채일화로 유명한 ‘원굉과 사안’이란다.

반원모양 부채가 병풍이 됐다. 부채 안 무늬는 아디다스, 밀레 등 각양각색 스포츠회사 라벨들이 패턴을 이룬다. 동공을 커지게 하는 작품이 또 있었다. 가로, 세로 각각 2미터가 넘는 정사각형 설치작품인데 계란 판을 쌓아올린 작품이다. 그런데 계란대신 석고로 만든 사람 얼굴상이 들어있다.


20~30대 젊은 작가들이 ‘부채’를 주제로 한 톡톡 튀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품하나하나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부채를 ‘휴식’, ‘바람’, ‘여백’, ‘관계’로 인식해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재조명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평면회화 작품 외에도 천, 나무, 시멘트, 옻칠, 자개 등 수많은 재료들이 폭넓게 사용됐다.

이번 전시는 공모전에서 당선돼 본선에 진출한 신진작가 16명의 작품들이 소개되는 자리다. 까스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에서 출연한 가송재단의 공모전이다. 지난 4월 접는 부채인 ‘접선’을 주제로 개최돼 본선에 진출한 작품들이 가송재단의 두 번째 '여름생색' 전시를 통해 선보여진다. 가송재단은 고(故) 가송 윤광열 동화약품 회장의 사재출연으로 지난 2008년 설립됐다.

접선을 테마로한 젊은 작가들의 톡톡튀는 아트전시 '부채'展 권선, About shatter(원굉이 사안을 만났을 때), 판넬에 혼합매체, 244×244cm, 2012


부채는 우리 고유의 전통예술로써 선조들이 접선의 면에 글과 그림을 그려 서로 주고받으며 멋과 풍류를 즐겨온 매개체다. 섬세한 작업과정을 거쳐 제작되는 공예품으로 임금께 진상하거나 사신들이 챙겨가는 선물품목 중 하나이기도 했다.


접선은 고려시대에 처음 발명돼 중국과 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후기 학자 이만영이 1798년 편찬한 유서(類書) ‘만물보’에도 “접선은 고려에서 시작됐다”라는 내용도 전해진다. 이외에도 최남선의 ‘고사통’, 명대 유원경의 고사집 ‘현혁편’ 등에도 비슷한 증언이 담겨있다.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은 “접선을 통해 부채의 예술적 가치와 가능성을 되짚어보고 미술계를 이끌어갈 역량을 갖춘 젊은 작가를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이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를 찾았다. 1,2,3,4층 전관에서 작품들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선 이지영 작가의 ‘Night scape(밤 경치)’라는 작품에 눈에 들어온다. 이 작품은 담양의 부채명인이자 죽세공품 무형문화재 김대석 선생과 함께 협업한 것이다. 장인 김대석 선생은 누대에 걸쳐 부채 일을 해온 가업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전통 작업방식 그대로 부채를 만들고 있다. 김 선생이 부채를 만들고 이 작가가 이 부채들에 색을 입혔다. 500개가 넘는 부채가 이어져 대형 꽃잎이나 뭉게구름의 형상처럼 보인다. 여름철 파란색 계열의 부채구름 속을 거니는 한 여인이 부채를 들고 신선놀음이나 풍류를 즐기는 듯하다. 이 작가는 과거 부채 안에 담긴 산수모습을 부채 밖으로 꺼내오면서 확장된 개념의 산수를 보여주고 있다.


진나라 원굉과 사안의 부채일화를 회화로 묘사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일화는 이렇다. 친구사이인 두 사람은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만난다. 사안이 잠자코 부채를 꺼내주면서 “이것을 기념으로 받아 주시오”라고 하니 원굉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반드시 어진 바람을 일으켜 백성의 생활을 지켜주고 싶군요. 그것이 저의 최대 행복입니다”고 답했다고 한다.


화학공학을 공부하다 미대전공으로 바꾼 권 선 작가의 그림에는 이 같은 일화가 담겨있다. 그런데 두 인물의 무대배경을 단지 길거리에서 나룻배로 바꾼 것뿐만이 아니었다. 나룻배가 떠있는 한강이 보이고 주변에는 현대식 다리, 빽빽이 들어찬 아파트 단지도 보인다. 과거와 현재라는 2가지 차원이 보인다. 두 가지 공간을 차용해 작가는 한국 정치에 대한 작은 희망을 ‘부채 바람’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금빛 바탕 재료에 석고를 붓고 면을 긁어 도상을 완성했다.

접선을 테마로한 젊은 작가들의 톡톡튀는 아트전시 '부채'展 김지민, Oxymoron-the_fan, 라벨, 흑경, 바느질, 300×300×180cm, 2012


김지민 작가의 ‘Oxymoron- the fan(모순어법-부채)'이란 작품은 부채를 대형 병풍으로 묘사했다. 부채 안 패턴들은 마치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인 것 같아 보인다. 작품 아래 깔린 검은색 바닥 지지대에 병풍부채가 그대로 투영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채의 패턴이 모두 스포츠 회사 라벨들로 꾸며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구하기 힘든 옛날 라벨들을 모아 바느질로 한땀한땀 이어 붙인 것이다. 작가는 동양의 부채가 서구로 흘러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발전했듯이 서구의 문물을 한국적인 것으로 재해석해 융합과 재창조를 통해 새로운 문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검은 계란 판을 겹겹이 쌓아올려 가로 세로 각각 210cm의 신기한 작품도 있다. 재밌는 것은 계란은 없고 그 안에 조그만 얼굴 조각상들이 빽빽이 들어있는데, 그 표정들이 각양각색이다. 문종선 작가의 ‘풍류’란 작품이다. 좁은 공간속에서 그 얼굴들이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뭔가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 듯 보인다. 하얀 얼굴조각상들이 이 대형 작품에서 선을 이루고 있는데 지그재그 모양으로 마치 부챗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빡빡한 일상과 좁은 공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한다. 부채가 중국과 교류했던 흔적을 가지고 있듯, 이 작품의 얼굴조각들은 개인주의 속에서도 진보된 소통을 원하는 현대인을 의미한다.


접선을 테마로한 젊은 작가들의 톡톡튀는 아트전시 '부채'展 문종선, 풍류(風流), 210×210×30cm, 2012


하계훈 미술평론가는 “이번 공모전은 다른 공모전에 비해 입체나 설치, 한국화 분야의 작가들이 적지 않게 응모한 게 가장 큰 특징”이라면서 “중견작가와 같은 완성미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작가로서의 개성과 표현기법의 독자성, 발전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들이 참 많았다”고 평가했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화, 서양화,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주현, 구본아, 권선, 김윤아, 김지민, 문종선, 박지은, 송유정, 오재우, 윤혜정, 윤휘근, 이지영, 이진희, 임희성, 최준경, 허진만 등 16명의 젊은 작가들이 참여한다.


가송재단은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3명에 대해 대상 1명, 우수상 2명을 선정해 시상할 예정이다. 또 수상자와 상관없이 참여작가 중 두 명을 선정해 중국 북경 레지던시 3개월을 지원하며 장기적인 후원을 통해 뉴욕 소재 갤러리와 연계해 개인전을 열 방침이다.


전시는 오는 17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문의 02-730-1144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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