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재수사가 몸통과 윗선, 입막음용 돈의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면죄부 수사, 솜방망이 수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13일 지난 3개월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자칭몸통'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진짜) 몸통처럼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500여건에 달하는 광범위한 사찰을 진행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이 전 비서관의 주도 하에 신설됐고 사건을 덮으려고 뿌려진 금품의 출처도 모두 이 전 비서관이라는 설명이다.
◇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검찰이 불법성을 찾아내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사례를 들여다 보는데 쏟아 부은 수사인력은 실로 방대하다. 검사14명을 포함, 60여명의 수사인력이 동원돼 추적한 계좌만 665건, 조사받은 연인원만 150여명에 달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등 재계인사, 이용훈 전 대법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 정ㆍ관계인사, 방송인 김미화, 경실련 공동대표 보선 스님 등 각계 각층의 유명인사부터 민간인에 이르기까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밝혀진 사찰 사례만 500여건에 달한다.
검찰은 그러나 이 중 단 3건만을 불법사찰로 규정하고 나머지는 단순 정보 수집에 불과해 형사처벌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울산지역 민간기업 사찰과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인 전 칠곡군수에 대한 불법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왕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부족한 밑그림을 보완하는데 그쳤다.
◇ 검찰은 수사기관? 변론기관?=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몇가지 드러난 정황마저 제대로 결론 내지 못해 의혹만 남겼다. 그중에서도 ▲ 지난 4월 구속기소된 이영호 전 비서관과 최종석 전 행정관 등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이 불법사찰의 도구인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증거인멸을 지시한 정황 ▲ 이들이 1차 수사 당시 증거인멸 혐의만 재판에 넘겨졌다 재수사를 통해 드러난 불법사찰 가담 정황 ▲ 불법사찰을 연루된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기획총괄과장에게 특수활동비를 제공한 정황이 대표적이다. 특히 검찰은 '비선보고'라인의 정점으로 거론된 대통령실장에 대해선 "보고받은 적 없다"고 적힌 종이를 전달받는 정도로 한차례 서면조사하고 의혹을 덮었다.
역대 정부의 잘못된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청와대의 변명에 검찰 수사를 짜맞췄다는 지적도 거세다. 또 수사결과 발표에 과거 참여정부 조사심의관실의 사찰 흔적도 끼워넣어 논란을 부추기도 했다. 검찰은 "네가 있어 다행이다, 애들 좀 잘 챙겨라"는 박 전차관의 전화를 받고 선뜻 잘 알지도 못하는 공직윤리지원관실 사찰팀원들에게 수천만원을 건넨 이상휘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에 대해선 판례까지 언급해가며 범인도피나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설명해 변론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 예견된 실패=여기에 불법사찰 배후로 끊임없이 거론돼온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ㆍ검찰의 수장인 장관으로 앉아있는 이상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일심(一心)으로 충성'한 진짜 '몸통'을 검찰은 찾아낼 수 없다는 지적이 흘러나온다.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권재진 현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서면질의가 없었는데도 자발적으로 진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권 장관이 제출한 진술서의 요지는 '불법사찰이 이뤄진 사실을 알지 못했다. 민정수석실은 개입하지 않았다'가 전부다. 권 장관은 지난 8일자로 작성된 종이만을 남겨둔 채 현재 해외순방길에 올라 있다.
참여연대는 "검찰의 실패는 예견된 사태"라며 "국회는 조속히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민간인 불법사찰 진상규명에 나서고, 국회 차원에서 검찰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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