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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만에 돌아온 그리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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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만에 돌아온 그리운 아버지 고 이갑수일병 유가족 딸 이숙자(69) 아들 이영찬(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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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아버지는 비가오는 날이면 내 발이 젖는다며 등에 업고 등교까지 시켜주셨어요. 저를 많이 아껴주셨죠.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군인들과 함께 군용트럭에 끌려갔죠. 어렸을 적이라 무슨일인지 몰랐는데 전쟁터로 가는 길이었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죠."

딸 이숙자(69)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를 가슴에만 품고 지낸 지 62년만인 지난 12일 아버지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의 유해가 발견됐다는 것. 아버지 고(故) 이갑수 일병은 1916년 경남 창녕 태생으로 34세의 늦은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뒤로 하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미 7사단에 배속돼 북진 후 하갈우리 전투에서 전사했다.


유해가 북한에서 발견돼 미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 이영찬(65)씨와 부산에서 아침일찍 KTX에 올랐다. 25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아버지의 유해는 가록 폭 60cm의 국산 오동나무 소관과 관 내부를 감싼 전통 한지로 감싸여 있었다.

이숙자 씨는 "어머니가 1978년에 일찍 돌아가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며 "어머니 생전에 아버지의 유해소식이라도 전해들었으며 얼마나 좋았겠느냐"라며 흐느꼈다.


아들 이영찬 씨는 "아버지가 없는 어린생활은 경제적으로 마음적으로 어려웠다"면서 "그때마다 아버님이 계셨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유해라도 되찾을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번 유해봉환에 유가족을 찾은 주인공은 또 있다. 1933년 부산 태생으로 18세의 어린 나이에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해 미 7사단에 배속돼 북진 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김용수 일병. 미혼의 나이로 전사했기때문에 유일한 가족은 친형 김용환씨의 아들 김해승(54)씨 뿐이다.


고(故) 김용수씨는 입대 당시 "형은 고향에 내려가 집을 지켜야 한다"며 먼저 자원입대했다. 하지만 형도 동생을 지키겠다며 훈련소까지 쀮아가 같이 입대했다. 하지만 형만 살아돌아왔다. 60년이 흐른 지난 2010년 형 김용환씨는 동생 김용수씨를 찾겠다며 국방 유해발굴감식단에 DNA를 제출했다. 하지만 동생의 소식을 기다리다 그해 말 세상을 떠났다. DNA가 동생을 꼭 찾아달라는 무언의 유언이었던 셈이다.


김씨는 "할머니를 통해 작은아버지는 탱크부대에 있었는데 미그기 폭격맞고 앰블런스에 실려 가다가 폭격으로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었다"며 "아버지가 그토록 찾던 동생의 유해를 지금이라도 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 김씨는 "그동안 제삿일을 몰라 불교에서 제삿날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내는 9월 9일에 지냈다"며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게 죄송했던 마음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6ㆍ25전쟁 때 전사했으나 소재를 확인하지 못한 국군유해는 약 13만구다. 유족들은 북한지역에 묻혀 있는 국군 전사자 유해가 하루빨리 수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故) 이갑수ㆍ김용수 일병을 포함한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전사자 유해 12구는 이날 오전 공군 C-130 수송기를 통해 하와이에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양낙규 기자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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