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정문술’이라는 기업인이 있습니다.
벤처 1세대인 그는 거래소 상장기업인 미래산업을 창업한 분입니다. 기자가 대학생 시절 릫왜 벌써 절망합니까릮란 제목의 정 사장 자서전을 읽으며 ‘이 회사 경비원으로라도 취직 되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정 사장은 반도체 장비라는 분야에 문외한이었습니다. 그가 한 일은 반도체 장비를 개발할 역량이 있는 ‘엔지니어’ 직원들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것이었지요. 그렇다면 정 사장은 자금을 어디서 마련했을까요? 정 사장이 자서전과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이야기입니다.
“나는 월 2.0~2.5%의 사채로 기업을 일으켰다. 사업 초기에는 은행 돈을 써봤지만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필요하지도 않은 돈을 이자를 물면서 갖고 있어야 했고 괘씸죄에 안 걸리려면 정기적으로 거래은행 관계자들을 ‘관리’해야 했다. 정책자금도 두 번 써본 뒤 아예 끊었다. 이런저런 서류제출 요구가 너무 많았다. 또 제약조건이 많아 돈을 제때 필요한 곳에 쓸 수 없었다.”
정 사장이 미래산업을 창업한 때가 1983년입니다. 88올림픽을 전후해 한국경제가 가장 풍요로웠고 어딜가나 돈이 넘쳤다는 ‘3저(低 )시대’를 눈앞에 둔 시점이었습니다. 그때조차 중소기업은 은행 대출보다 사채를 빌려 사업하는 게 더 편했다는 겁니다.
금융위원회가 중소기업 전용 주식시장(코넥스·KONEX) 개설을 통해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은행대출에 편중된 중소기업 자금조달 구조를 코넥스라는 자본시장을 활용해 개선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산업 부문을 취재해 온 기자가 갖는 첫 느낌은 이런 의문입니다. “만약 1980년도에 국내에 코넥스가 존재했다면 미래산업이 상장될 수 있었을까?” 반도체 장비 기업이라는데 최고경영자(CEO)는 평생 공무원으로 지내다 퇴직한 나이 50이 넘은 사람이고 엔지니어는 고졸 출신 5~6명이 전부입니다. 부채는 산더미만큼 쌓여 있는데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상품도 없습니다. 당연히 상장 부적격업체로 낙인찍혔을 것이라고 봅니다.
반도체를 모르지만 CEO는 리더십이 있었고, 고졸 출신이만 경쟁사 상품을 구경만 하고도 내부 설계도를 그릴 줄 아는 천재 엔지니어가 있었으며, 비록 상품화는 실패했지만 누구도 갖지 못한 기술 등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 있었는데 이를 인정받기에는 당시 미래산업의 외모가 너무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8일 코넥스 공청회가 열린 한국거래소 대회의실은 참관객이 가득 차 관심이 높은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금융업계 인사를 제외한 중소기업인은 거의 없었다는 후문입니다.
코넥스의 초점은 투자자가 아니라 기업인에 맞춰져야 합니다. 회사 일 하기도 바쁜 중소기업 사장들이 돈 때문에 은행 또는 사채업자를 쫓아다니는 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하려면 말입니다.
채명석 기자 oricm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