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그룹 주주, CEO 연봉 계획에 반기
[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최고 경영자(CEO)에게 터무니없는 액수의 연봉을 지급해온 월가의 관습에 주주들이 제동을 걸고 나서는 일이 벌어졌다.
1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씨티그룹의 주주들은 텍사스주(州) 달러스에서 17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최고 경영자 비크람 팬디트에게 1500만달러(170억원)의 보수를 지급하려는 계획에 반대했다.
무려 55%나 되는 주주들이 이사회의 의견에 반대의 뜻을 표명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45%의 주주들은 고액의 연봉을 통해 유능한 인재를 유치해야 한다는 회사측의 입장을 지지했지만 대세는 '안된다'였다. 팬디트 CEO가 주총 하루전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올해 배당 확대를 기대하지 말라고 말한 것은 이번 투표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주주들은 배당을 확대하지 않으면서 1500만달러나 되는 거액을 받아가는 CEO를 용납하지 않았다.
과거 월가의 주주들은 본인들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CEO에게 높은 보수를 지급해왔지만 주가 하락을 경험한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지난해 씨티그룹의 주가는 44%나 폭락했다. 씨티그룹의 주주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이사회측의 계획에 반대했다.
세계적인 기관투자자 자문기관인 글래스 루이스와 ISS도 주주들에게 은행의 계획에 반대표를 던지라고 조언했을 정도다.
이번 사례는 지난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모럴 해저드 논란을 부른 월가 대형 금융기관들의 과다한 보너스를 규제하는 이른바 '세이 온 페이(say on pay)' 규정을 도입한 이래 현실에서 적용된 첫 예라고 타임스는 전했다.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에 따라 제정된 이 규정에 따라 투자자들은 최소한 3년에 1번 주주총회에서 임원보수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투표를 할 수 있다.
20~30년 전 CEO와 일반 직원 간의 보수 격차는 일반적으로 30배였지만 현재는 이 격차가 300배 이상에 달하고 있어 이를 축소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 결정은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씨티그룹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씨티그룹의 이사회 의장인 리차드 파슨스는 "이사진들은 이번 투표를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고 경영진의 보수를 결정하는데 보다 공식화된 방식을 적용하겠다"고 약속했다.
팬디트의 경우 미국의 다른 상업은행이나 투자은행 CEO에 비해 많은 급여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2007년 금융위기 당시 전격적으로 CEO에 발탁된 이후 2009년 연봉을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해 연봉은 1490만달러였다.
이번 투표에 참여한 캘리포니아 공공퇴직연금의 책임자인 앤 심슨은 "이번 세이온페이 조항에 따른 투표는 보상은 성과에 따라 이뤄짐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백종민 기자 cinq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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