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사업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비가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육성 정책만 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뒤나 밑을 좀 보고 정책을 펴자는 방향입니다. 용기나 꿈을 잃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지난달 30일, 송종호 중소기업청장은 빗속을 뚫고 경상남도 통영 여객터미널에서 뱃길로 50분을 달려 죽도의 (재)재기중소기업개발원 죽도연수원을 찾아 교육생들에게 이 같이 말했다.
송 청장은 다음 날 있을 2기 교육생의 수료식을 앞두고 이곳을 찾았다. 재기를 준비하는 교육생과 툭 터놓고 이야기하며 이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다. 개발원은 사업을 하다 쓰디쓴 실패를 맛본 중소기업인들이 다친 마음을 치유하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는 곳으로, 부산에서 가스제조업을 하는 전원태 엠에스 코프(MS Corp) 회장이 사재를 털어 만들었다.
교육생들은 이곳에서 4주간에 걸쳐 심리치료, 외부와의 단절, 전문가의 1:1 멘토링, 비전 수립 등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잠재력을 깨우는 수업을 받는다. 특히 둘째주부터는 개발원 뒤 야산에 텐트를 치고 홀로 밤을 새우며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교육 내용은 철저히 '치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교육비는 없다.
송 청장은 "중소기업을 하다 돈이 부족하면 눈물로 채웠을 테고 기술은 땀으로 채웠을 텐데, 그런 분들께 뭐라고 말씀드릴까 생각이 많았다"면서 "지금도 전국적으로 실패를 경험한 어려운 분들이 많은데 허심탄회하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후배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먹서먹했던 분위기도 잠시, 교육생들은 하나 둘 자신의 이야기를 툭 터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구구절절한 사연은 각기 달랐지만, 세금 체납 문제와 재창업 후속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조모씨는 "국세, 지방세 체납금은 감면제도가 없어 재기하는데 장애물이 된다"면서 "기업 경영을 하면서 성실히 세금을 납부해왔고 재기에 성공할 경우 추가 세금 납부가 가능한 만큼 도덕성 평가 등을 통해 그간의 성실 납부자에 대해서는 체납세액을 감면해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생들의 말은 들은 송 청장은 즉각 "법원에서는 파산이나 개인회생 절차를 통해 기존 채무를 감면해주고 중기청에서는 재창업지원금을 지원해주는데 국세 체납은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제도가 없다. 이 문제는 국세청장과 협의해보겠다"고 답했다.
김정엽(51)씨는 "파산 및 개인회생 절차를 통해 신용이 회복되더라도 '전과기록'(신불자 기록)이 남아있어 금융기관이나 보증기관으로부터 각종 수혜를 받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자 송 청장은 "개인회생이나 파산 과정에서 신불자 기록을 없애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법무부에 제도 개선을 요청해보겠다"고 말했다.
중기청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재기교육과 자금지원 강화를 포함한 다양한 정책 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달 중으로 재창업지원자금을 기존 전략업종 외에 일반업종까지 확대하고, 개발원과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과 함께 재기지원 포럼을 6월 말 열 예정이다.
송 청장은 다음날 열린 수료식에서 교육생들에게 "사업 실패 후 원한과 원망이 가슴 속에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남의 탓으로 돌리기 쉽다. 이젠 다 비우고 나가면서 내 탓으로 돌려야 다시는 전철을 밟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고난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 언젠가는 빛이 나온다"며 "개발원을 만든 뜻을 가슴에 새기면서 의지나 꿈을 절대 접지 말고 다시 한 번 재기해보라"고 덧붙였다.
박혜정 기자 parky@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