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교수(敎授)'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가르치는 사람'이다. '장관'은 정부 정책을 실행하는 국무위원이다. 교수와 장관을 가르는 기준은 '실행능력'이다. 교수가 장관처럼 행동하면 오지랖이 넓은 것이지만, 장관이 교수처럼 말해도 요령부득이다. 요사이 작심한 듯 세제 개편안을 거론하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을 보면, 문득 그가 교수 시절로 회귀한 듯한 착각이 든다.
박 장관은 지난 한 주 동안 두 건의 큼직한 세정 이슈를 링 위에 올렸다. 지난 19일 그는 '종교인 과세'의 당위성을 얘기했다. 이 발언은 "올해 세법 개정안에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부연 설명과 맞물려 파괴력을 더했다. 각 종단과 법률ㆍ시민단체가 저마다 입장을 내놨고, 언론도 관련 소식을 비중있게 전했다.
25일에도 박 장관은 '소득세 과표구간 상향 이동' 가능성을 내비쳤다. '1200만원 이하(6%)'부터 '3억원 초과(38%)'까지 소득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뉜 과표 구간을 위로 조금씩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렇게 하면 물가가 올라 달라진 화폐가치를 세율에 반영할 수 있다. 자연스레 감세 효과도 본다. 국민들에겐 귀가 쫑긋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재정부의 후속 조치는 아리송하다. 재정부는 박 장관의 종교인 과세 발언 이튿날에야 "장관의 발언은 원론적인 입장을 언급한 것이고, 적용 방법이나 시기 등은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
재정부는 소득세 과표구간 관련 언급에도 '물 타기'에 바빴다. 세제실은 "이 문제도 물가 상승세를 고려할 때 생각해 볼만한 일이라는 원론적인 언급이었다"며 "당장 뭘 어떻게 하겠다는 얘긴 아니다"라고 했다. 발언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세제실을 보면, 박 장관의 잇단 언급은 아마도 당국자들과 교감을 거쳐 나온 게 아닌 듯하다.
장관이 끄집어낸 세정의 고민들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하지만 장관이 던지고, 당국자들이 주워담는 그림은 볼썽 사납다. 장관이 교수 시절 학생들 가르치듯 참신한 세정의 구상을 '소개'하는 데 그쳐선 곤란하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 그저 '간 보는 데' 사용하기엔 재정부 장관의 입을 주목하는 시선도, 장관이 꺼내든 이슈도 너무 뜨겁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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