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의 스케치북> KBS2 금 밤 12시 15분
“그런 생각 들어요. 아, 우리 행복하구나. 우리 다 같은 추억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추억할 게 너무 많네요?” 유희열은 벅찬 목소리로 외쳤고, “최소한 대리 3호봉 이상, 세월의 흔적을 직격탄으로 맞은” 관객은 함성으로 답했다. 90년대 가요계를 추억하는 이들을 타겟으로 한 <유희열의 스케치북> ‘청춘 나이트’ 특집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흑인음악 붐의 효시였던 현진영으로 포문을 연 ‘청춘 나이트’는 H.O.T.와 핑클을 거쳐 박미경, 클론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으로 댄스가수의 전성기 90년대를 추억했고, 윤종신과 김건모를 지나 ‘마지막 승부’의 김민교로 마무리되는 구성은 90년대 음악사를 개괄하기 충분했다. 가수들이 마이크를 객석으로 넘길 때마다 추억을 공유한 관객들이 일사불란한 ‘떼창’으로 호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90년대도 향수성 기획의 대상이 됐다’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물론 7080이 왕년의 가수를 추억으로 호명하며 향수를 자극하는 반면, 유희열, 윤종신, 김조한 등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들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90년대를 현재진행형으로 보이게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7080과 90년대가 소비되는 방식이 다른 근본적인 이유는, 오늘날의 가요계 지형을 완성한 것이 90년대이기 때문이다. 급작스런 세대교체로 끊기다시피 한 7080의 포크/메탈 계보와 달리, 윤종신-유희열-김조한으로 이어진 발라드/R&B 계보와 현진영-김건모-클론-H.O.T.로 내려간 댄스/퍼포먼스 계보는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사운드 구성이나 세부적인 장르 차이는 있지만, 90년대를 관통했던 장르적 정서는 현재에도 유효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클럽이 있지만 우리들은 나이트가 있다”는 유희열의 멘트는 90년대가 ‘올디스 벗 구디스’가 아니라 오늘날의 가요계를 설계한 ‘올타임 페이보릿’이라는 자부심의 고백이다. 그리고 그것은 90년대부터 지금까지 가요계를 지키며, 심성락에서 카라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한 영역을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아 소개해 온 유희열이기에 더 미더운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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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승한(자유기고가) 외부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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