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지난 20일 점심. 백운찬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에게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 의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하루 전 나온 박재완 장관의 "종교인 과세" 관련 발언의 의미를 묻는 전화였다.
백 실장은 "'국민이면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의미의 발언이었다"고 답했지만, 통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이 의장은 정부가 작심을 한 건지, 액션만 취해보는 건지 '발언의 농도'를 가늠하고자 하는 듯했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이 문제에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얘기다.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건 여당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당직자들은 드러내고 언급하길 꺼렸지만,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괜한 일을 벌인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계산 때문이다.
종교인에게 소득세를 걷는 문제는 표면적으로 지난 2006년 국세청이 재정부의 유권해석을 요청하며 불거졌다. 하지만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해온 세제실장의 말을 빌면, 종교인 과세는 그가 사무관 때부터 논란이 돼온 해묵은 숙제다.
요사이엔 종단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고 천주교 사제들도 1994년부터 소득세를 내고 있지만, 종전엔 종교인 과세 문제에 '신성모독' '종교탄압'이라 반발하는 일이 흔했다. 신도들을 앞세운 각 종단의 반발에 정치권이 가세하면, 정부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실정법이 관습법의 굴레에 갇힌 꼴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바득바득 세금을 걷겠다 나설 유인이 크지 않았다. 세원으로서 큰 의미가 없어서다. 기업에 가까운 대형 교회의 유명 목사들도 사례금(연봉) 명목으로 받는 돈은 많지 않다. 차량 유지 등에 쓰이는 돈은 대개 교회의 비용으로 처리된다.
정부는 종교인에게 소득세를 물려도 대부분 면세점 이하일 것으로 본다. 월수입이 2인 가족 기준 120만원(연 1440만원), 4인 가족 기준 150만원(연 1800만원) 이하면, 소득세를 물지 않는다.
천주교 사제들과 스님은 예외지만, 결혼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기독교 목사들은 부양가족공제도 받을 수 있다. 의료비 공제 등 각종 추가 공제까지 받으면, 면세점보다 월수입이 좀 더 많아도 세금 내는 종교인은 드물 듯하다.
그러니 선거를 앞둔 지금, 박 장관의 종교인 과세 언급은 '세정'이라기보다 '정무'에 가까워 보인다. 종교인에게 세금을 걷어 나라살림에 크게 보태겠다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다잡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내내 '고소영 내각' '부자 감세' 시비에 휘말렸던 게 이명박 정부다. 이 대통령이 임기 말 '공정사회'를 강조하는 건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론은 종교인 과세를 반긴다. '공평과세' 원칙에 대한 지지다. 경제 상황이 어려우니 더 그렇다. 실정법도 정서법도 박 장관의 편이니, 종교인 과세는 되면 좋고, 안돼도 명분이 괜찮은 카드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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