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새벽에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아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한다. 응급실이 아니라 전쟁터다.
응급실에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질병을 호소하는 사람과 매우 위중한 환자가 뒤섞여 있다. 의사들은 당연히 중증질환자를 우선적으로 진료한다. 경증질환자는 순위에 밀려 밤을 꼬박 새는 일이 흔하다.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돈은 돈대로 비싸다.
이는 제한된 의료자원의 효율적 이용 행태가 아니다. 경증ㆍ중증질환자 모두가 서로에게 피해를 준다. 정부가 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비슷한 취지에서 가정상비약 편의점 판매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7일 국회 상임위에 약사법 개정안이 상정됐지만 최종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약사들의 반대 때문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논리는 크게 3가지다.
우선 국민의 안전이 위협 받는다는 것과 골목 약국이 망한다는 것이다. 안전 문제는 핑계일 뿐이고 약국 경영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국민의 불편 해결이라는 공적 이익이 우선이다.
하지만 마지막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일부 약사단체들은 상비약 편의점 판매 논의를 중단하고 시간외 진료센터를 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새벽에 갑자기 몸이 아픈 사람에겐 '약(藥)'이 아니라 '의(醫)'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공감한다. 다만 '약'도 필요하다는 전제를 깔고서다.
명칭이 시간외 진료센터든 무엇이든, 혹은 당번 의원을 지정하든 국가가 직접 운영하든 그 방법에는 논의가 필요하다. 다만 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을 선택하기 전에 질병의 위중함을 판단해주고, 간단한 증상은 현장에서 해결해주는 의료기관의 필요성은 분명해 보인다.
또 24시간 문을 여는 의료기관이 있으면 자연스레 인근 약국도 영업을 하게 된다. 약사들이 우려하는 '편의점에서의 무분별한 약 구매'도 예방할 수 있는 길이다. 소비자는 편의점이든 약국이든 편한 곳에서 약을 구입하고, 진료가 필요한 경우엔 동네 심야병원을 찾으면 된다.
이렇게 되면 대형병원 응급실은 중증질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있다. 모두가 바라는 이런 의료환경은 장기적으로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설득력 있는 약사단체의 이런 주장에 대해 정부는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분야라 논의가 쉽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몇 개월간 경험했듯, 공적 이익이 크면 특정 이해집단의 반대는 충분히 극복 가능한 일이다.
상비약 편의점 판매 논의는 약의 선택권 중 일부를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의미심장한 첫 걸음이다. 응급의료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도 논의할 바탕이 마련됐다. 고질적인 응급실 병목현상에도 메스를 가해야 한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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