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에 국내에서 상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디언들은 '머리에 부는 바람' '주먹 쥐고 일어서' 등 독특한 이름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변변한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인디언들이 사용하는 어휘는 그 어떤 언어보다 풍부했다. 친구를 일컫는 말인 '나의 슬픔을 그의 등에 지고 가는 사람'에 담긴 서정성과 인간미를 보면 알 수 있다. 인디언들은 달력을 만들 때도 그 주위 풍경의 변화나 마음의 움직임을 포착해 그 달의 이름을 지었다. 크리크족에게 12월은 '침묵하는 달'이었으며, 퐁카족은 '무소유의 달'로 불렀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는 세계적으로 격변의 한 해였다. 중동의 재스민 혁명과 자본주의 심장인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점령하라(Occupy)' 시위 등은 모두 1%에 분노한 99% 보통 사람들의 저항이었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더욱 심화된 소득 양극화에 대한 반발이었다. 중산층을 위시한 서민들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쥐어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을 선정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 측은 경기 침체가 깊어지고 양극화 현상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이 단어가 계속 쓰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1%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공멸할 것이라는 인식이 등장한 한 해였다.
공자(孔子)가 살았던 집안에는 탐(貪)이라는 상상 속의 괴물이 그려진 걸개그림이 있었다고 한다. 이 괴수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물과 흙, 광물 등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을 먹어 치워 몸이 거대해지고 커진 몸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먹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물질과 생명들과 태양까지 먹어 치운 후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지자 이 괴물은 자기 몸을 뜯어 먹는다. 제 몸을 다 뜯어 먹고 나자 남은 것은 무(無)와 어둠뿐이었다. 이 걸개그림이 탐욕을 경계하라는 공자 집안의 가훈이었던 셈이다.
부유층에게 공자의 가르침은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요구이다. 이런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자산을 기부한 것으로 유명한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등은 부자들이 고통분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자신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유럽 등 전 세계로 이런 분위기들이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의 '2011년 사회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들도 공정사회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문은 '조세 부문(27.8%)'이라고 응답을 했다. 취업 부문이 25.2%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우리 중산층의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복지에 대한 요구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소득불평등의 완화와 경제발전에 따른 국민의 '복지욕구 증대'는 올해도 가장 큰 사회적 관심사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통계청은 정부의 양극화 해소와 서민 복지를 위한 정책이 올바른 방향성을 갖고 또 효율적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정책 수요를 뒷받침하는 통계 개발과 기존 통계 개선에 힘을 기울일 것이다. 민생 안정과 삶의 질을 반영하는 통계 작성을 위해 가구종합패널을 구축하고 고용통계를 세밀하게 파악할 예정이다. 사회적 관심계층인 청소년, 여성, 고령자 등 특정계층에 대한 통계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취합하여 제공하는 등 수요자 친화적 통계서비스도 확대하고 또 통계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 역시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다.
인디언들에게 1월은 '마음 깊이 머무는 달'이다. 새해 새로운 희망과 계획을 긴 호흡으로 마음 깊이 차분하고 확실하게 시작하는 임진년 1월이 되었으면 한다.
우기종 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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