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대통령이 직접 '배추'를 거론했는데 당장 목 내놓고 일해야 하는 '배추 장(長)'은 누가 맡아야 할지...참 어렵습니다."(과천 공무원)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폭등해 국내 기름 값이 고공비행 한다면 과연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요? 이스라엘 국방장관에 호통을 칠 수도 없고..."(대기업 임원)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물가관리 책임실명제'를 언급하면서, 관가와 정치권은 물론 관련 산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쏟아내는가 하면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기업에서는 "그러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은 어떻게 해소하란 말이냐"며 볼멘소리다.
과천 관가의 공무원들은 비상이 걸렸다. 당장 5일 열리는 비상경제대책회의에는 이 대통령이 지시한 '물가관리 책임실명제'가 긴급 안건으로 올라왔다.
그러나 실제로 물가가 관리한다고 해서 잡히지 않는다는데 공무원들의 고민이 있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서민 생활과 밀접한 52개 품목을 별도로 선정해 집중적으로 관리했던 이른바 'MB 물가'가 사실상 실패로 끝난 것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른바 'MB 물가'로 지정됐던 쌀과 돼지고기 고등어 사과 고추장 등은 당국의 집중적인 '관리'에도 최대 48% 급등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각 품목별 책임자를 정해 수급 현황을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서도 "하지만 대외 변수에 의한 수급 불균형과 그에 따른 가격 변동 등 공무원 개개인의 역량으로는 물가 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7월부터 16개 품목에 대해 사실상의 물가 실명제(물가 관리 책임관)를 진행해 왔다"면서 "신년을 맞아 물가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쓰라는 의미에서 강조하신 것 같아 좀 더 보완을 해서 재보고를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최근 '가격 인상안 철회' 파문을 연이어 일으킨 유통업계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모 기업의 팀장은 "올해는 구정 연휴와 총선, 대선 전후 등 세 차례에 걸쳐 물가 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시기적으로 물가 인상의 변수가 많아 실명제의 실효성은 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기업의 임원은 "물가를 실명제로 관리한다면 단기적인 성과는 나타날 수 있겠지만 결국 썩어서 고름이 터지 듯 가격이 제 자리를 찾아갈 땐 급등의 우려가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농협유통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농지가 대형화, 시스템화하지 않아 산지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농민들에게 억지로 '이거 심어라, 저거 심지 마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토로했다.
정치권에서도 물가관리 책임실명제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wonheeryong)를 통해 "물가관리 품목마다 담당 공무원의 직을 걸고 실명제를 한다고요?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책임 전가이죠.효과는 물론 없고, 민망한 호통만 있을 뿐입니다"라고 비판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doorun)도 "환율, 이자 등 수출 위주의 거시 정책은 물가를 부추기면서 미시적 규제로 물가를 잡는다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쓴 당사자는 책임을 안지면서..."라고 말했다.
김혜원 기자 kim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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