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국립현충원서 영결식 엄수
박 대통령 묘소와 200m 거리
조정래 작가 "한국의 마하트마" 칭송
정준양 회장 "청암의 정신 발전·계승 시킬 것"
전국서 3만6000여명 분향소 다녀가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84년간의 고단했지만 보람있었던 이승에서의 ‘소풍’을 마치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 박정희 대통령 곁에 영면했다.
고 박 명예회장 장례위원회는 17일 오전 9시30분 서울 동작구 국립 서울 현충원 현충관에서 고인의 영결식을 엄수했다.
김동건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영결식은 고인의 유족과 박희태 국회의장과 하금열 대통령실장, 원혜영 민주통합당 공동대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모리 전 일본수상, 정동영·이재오 국회의원, 고 박 대통령의 장남 박지만 이지(EG) 대표이사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등 6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운구 차량에서 태극기로 덮인 영구를 든 국군 의장대가 고인이 생전에 받았던 충무무공훈장 등을 앞세우고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조문객들은 모두 일어서 고인에 대한 예를 표했다. 이어 황경로 장례위원장이 박 회장의 약력을 보고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조사에서 “응접실에도 사무실에도 그분의 사진을 걸어놓고 그토록 그리워하신 박 대통령 곁으로 모시게 되어 그나마 저희에게는 조그만 위안”이라며 “오늘 저녁이든 내일 저녁이든 저승 가시는 여독이 풀리시거든 두 분께서 다정하게 주막에 앉아 막걸리 잔을 나누시기를 두 손 모아 빌겠다”고 그리움을 전했다.
박 명예회장에 대한 연구 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한 정 회장은 “‘당신의 무엇이 탁월한 위업을 성취하게 했는가?’ 이 질문을 통해 당신의 정신세계를 체계적으로 밝혀내서 우리 사회와 후세를 위한 무형의 공적 자산으로 환원할 것이며, 그 가운데 저희가 맞을 난제의 해법을 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정래 작가는 전날 원고지에 직접 펜으로 썼다는 조사를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내 읽으며, “추운 걸 그렇게도 싫어하셨는데, 하필 영하 10도의 엄동설한에 돌아가십니까”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조 작가는 “‘경제의 아버지’라는 칭송으로 모자라다. 당신의 업적은 소설로 만들면 명작, 음악으로 작곡하면 명곡, 그림으로 그리면 명화가 됐을 것”이라며 “인도인들이 간디에게 ‘성스러운’ 이라는 뜻의 ‘마하트마(Mahatma)’를 붙여준 것처럼 저도 그의 이름에 마하트마를 붙여 ‘마하트마 박’이라고 칭하고 싶다”는 말로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했다.
그는 “간디가 죽고 난 뒤 인도인들은 간디가 걸어갔던 길을 걸으려 하지 않고 있다. 힘들고 외롭기 때문”이라며 “아마 한국인도 마하트마 박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박 명예회장은 우리의 영원한 사표이자 보물이다”고 전했다.
홍 장관은 “(고인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위민 헌신의 사표”라고 말했다.
장례위원장인 박준규 전 총리는 미리 준비했던 추도사 원고를 고인의 위패 앞에 놓고서는 “속에 있는 말 몇 마디만 하겠다”며 “우리 남기고 가니 좋겠죠? 위엔 이승만 박사(초대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계시니까”라며 먼저 간 친구에 대한 원망스러움을 나타냈다.
이어 그는 감격에 복받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적시에 잘 가셨다. 농담할 친구는 이제 없지만 나라를 이렇게 키워놓고 갔으니. 존경한다”는 말로 고인에 대한 애정을 털어놨다.
가수 장사익씨는 고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 음을 붙인 조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를 반주 없이 애절한 목소리로 불러 분위기를 숙연케 했다.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는 조전을 보내 “선생님을 잃은 것은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도 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며 유족을 위로했다.
이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고인의 마지막 공식 석상이었던 지난 9월 19일 포항 지곡동 포스코 한마당 체육관에서 재직시절 함께 근무했던 퇴직 직원들과 19년 만에 마련한 만남의 행사에서 박 명예회장이 눈물을 흘리며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자 많은 참석자들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유족들과 참석자 대표가 영정 앞에 헌화하고 묵념하는 것으로 약 1시간 30분간 진행된 영결식은 마무리됐고, 고인의 시신은 운구차에 실려 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3묘역으로 옮겨졌다. 이곳은 고 박 대통령의 묘소와 200여m 거리로, 공간이 모두 찬 서울 현충원에서 박 대통령 곁에 가장 가까이 모실 수 있는 장소였다고 한다.
고인은 평소 자신을 믿고 모든 것을 밀어준 고 박정희 대통령의 곁에 눕고 싶다는 말을 유족들에게 이야기 했다고 주변 관계자들은 전했다.
11시 33분 헌화 분향으로 시작된 안장식에는 영결식에 참석했던 인사 대부분이 참관했다. 영구를 감쌌던 국기를 유족에게 전달한 뒤 장지에 하관된 고인 위로 장남 성빈씨와 부인 장옥자 여사 등 유족과 장례위원들이 차례로 관 위에 허토했으며, 군 의장대의 조총 발사를 끝으로 안장식이 마무리됐다.
한편 이날 일정은 오전 7시 5분경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1층 영결식장에서 가진 발인 예배로부터 시작됐다. 지난 5일간 고인의 빈소가 마련됐던 지하 2층 특1호실에 모셔졌던 고인의 영정을 20여명의 국군 의장대원들이 모셨고, 뒤를 이어 유족과 장례위원회 의원들이 뒤 따르며 발인 예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재훈 온누리교회 담임목사의 주재로 진행된 발인 예배에는 약 200여명이 참석했으며,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인사들 상당수는 영결식장 밖에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예배를 마친 뒤 7시 40분경 고인은 리무진 운구차량에 몸을 실었으며, 57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로 이동했다. 유족과 조문객 등은 10여대의 버스와 20여대의 승용차에 나눠타고 고인의 뒤를 따랐다.
8시 25분 운구 차량이 포스코센터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포스코 직원 300여명이 도열해 1층 로비 분향소로 향하는 고인의 위폐와 훈장에 목례를 했다. 로비 안에는 1500여명의 포스코센터 전 직원이 분향소를 중심으로 1~2층에 서서 위폐와 훈장이 분향소에 안착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노제는 인재혁신실 팀 리더가 직원대표의 조사로 시작됐으며, 전 직원이 합창으로 사가를 부른 뒤 묵념의 시간을 갖고 끝을 맺었다. 포스코 직원들은 거리 밖으로 나와 고인이 현충원으로 출발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편, 지난 13일 별세후 5일간 사회장으로 치러진 고 박 명예회장의 장례 기간 동안에는 세브란스 병원, 포스코센터 및, 포항·광양 등 전국 6곳에 분향소가 설치됐으며, 16일 저녁 10시 기준 총 3만5549명(방명록 작성 기준)이 다녀갔다고 장례위원회측은 전했다.
지역별로는 세브란스병원 빈소에 2714명, 포스코센터 2633명, 포항 1만6102명, 광양 1만4102명 등으로 집계됐다.
장례위원회측은 방명록을 작성하지 않은 조문객들을 포함시킨다면 7만~8만여명의 조문객이 고 박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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