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나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더 많은 짐과 고통을 줄 것 같아 선택했다."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족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는 17일 오전 경기도 광주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성실한 남편이었다. 제2금융권이라도 서민경제의 축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다. 본행 금융팀장을 두루 거친 끝에 2007년 이사로 임원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2009년엔 계열은행 행장이 됐다. 행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본사와 계열은행에서 계속 상무로 근무해왔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도 아이들을 걱정하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검찰의 저축은행 수사에 압박을 느껴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토마토저축은행 차모(50) 상무 얘기다. 이 은행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목숨을 끊어야 할 만큼 큰 잘못을 하신 분이 아니다. 어쩌면 구조적인 문제에 희생된 것이다. 안타깝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단장 권익환 부장검사)이 저축은행 비리에 칼끝을 세운 가운데 수사과정에서 잇단 자살 참극이 빚어져 수사 관계자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차씨도 그 중 한 명이다. 반응은 '안타깝다'는 쪽으로 모아진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아프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것이다.
18일 경찰에 따르면, 차 상무는 토마토저축은행의 부실대출과 관련 지난달 한 차례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를 받았다. 합수단은 지난주 차씨를 재소환했지만 차씨는 이에 응하지 않고 연락을 끊은 채 지내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인 정모(48)씨가 17일 오전 '여보 사랑해. 영동리에서 자고 있어 나 깨워 줘'라는 문자를 받고 찾아간 자리엔 호흡과 맥박이 모두 멈춘 차씨가 있었다.
앞서 합수단은 2004년부터 최근 영업정지 직전까지 무담보 또는 부실담보 상태에서 법인과 개인 등 차주들에게 2373억여원을 대출해줘 은행에 대출대환 금액 등을 제외한 1633억여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토마토저축은행 대주주 신현규(59)회장을 구속기소했다. 같은 은행 남모(46) 전무도 기소됐다.
담보가 부실한데도 돈을 내어주고, 신 회장 등이 대출의 일부를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 운영비로 횡령하는 과정에서 여신담당 업무를 맡았던 차씨는 강도 높은 수사 끝에 피의자가 되는 길 대신 죽음을 택하고 말았다.
저축은행 관련 사망자는 차씨가 처음이 아니다. 영업정지 저축은행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이뤄지던 지난 9월 서울 창신동 본점서 투신자살한 정구행(50) 제일2상호저축은행장에 이어 저축은행 관계자로는 두 번째다.
은행 관계자 외에도 저축은행 사태로 목숨을 끊거나 끊으려 했던 시도도 있었다.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전 사전 특혜인출 논란이 불거지자 임상규 순천대 총장과 부산지원에서 근무하던 금융감독원 수석조사역도 목숨을 끊었다. 8월 저축은행 국정조사 과정에서 김장호 금감원 부원장보도 한강에 투신했다 한강구조대에 의해 목숨을 건졌다.
대주주와 경영진에 의해 담보부실대출이 이뤄지고, 부실대출의 이자채권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추가대출로 부실을 키우고, 그 와중에 회삿돈 횡령이 자행됐다. 그러다 문제가 불거지면 감독당국 관계자 등을 상대로 로빌를 벌였다. 이미 대주주와 경영진이 구속기소된 제일ㆍ에이스ㆍ토마토ㆍ파랑새 등 영업정지 저축은행마다 발견되는 고질적인 저축은행 비리의 단면이다. 이 과정에서 여신에 관계한 사람들이 수사 과정에서 둘이나 목숨을 끊은 것이다.
수사 당국도 당황스럽고 참담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고 치밀하게 수사하려 애쓰기도 한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수사를 안 했다면 죽지 않았을 사람들이었다는 점만 빼놓고 생각을 하면 죄책감이 들 정도로 안타깝고 미안하다"면서 "검사들도 이런 일을 겪으면 그 상처를 쉽게 지우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렇지만 더 많은 희생을 막고, 저축은행이 '서민금융'의 지지대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게하려면 철저한 수사가 불가피하고 결코 피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 검찰의 생각이다. 검찰의 또다른 관계자는 "병든 금융이 서민경제도 곪게 한다. 연내 저축은행 비리를 뿌리 뽑는 것이 환부 자체에 매여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이 빚어지지 않는 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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