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채지용 기자]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기조는 더 이상 이어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상 시기를 저울질 하던 한은은 글로벌 경기둔화가 국내경기로 전이됨에 따라 이제 조만간 금리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5개월째 3.25%로 동결했다.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듬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이어온 금리정상화 기조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달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개최한 ‘경총포럼’에서 “금리 결정 우리만 정상화 가능하냐가 문제”라며 기존 금리정상화 기조에서 한 발 물러서는 입장을 나타냈다. 세계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에 적극 나서고 있는 마당에 홀로 금리정상화를 고집할 수 없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 8월 터키 중앙은행을 시작으로 브라질, 이스라엘, 인도네시아,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일제히 금리를 인하했다. 미국도 3차 양적완화로 실질적인 금리인하 효과를 노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통화긴축 정책을 이어온 중국도 최근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완화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 재정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는 등 대외불확실성이 갈수록 고조되는 가운데 이처럼 세계 각국의 금리인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둔화가 국내경기에도 점차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은도 결국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9월 경기동행지수와 선행지수가 동반 하락세로 돌아선 가운데 지난달에는 수출 증가율도 올해 들어 처음으로 한 자릿수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경기둔화가 점차 국내경기로 전이되는 모습이다.
3분기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동기대비 3.4% 성장했다. 전 분기와 같은 수치로 2009년 3분기 1.0%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전년동기대비로는 지난해 1분기 8.5%에서 2분기 7.5%, 3분기 4.4%, 4분기 4.7%, 올해 1분기 4.2%, 2분기 3.4% 등으로 꾸준한 둔화추세를 지속하고 있다. 올해 평균 성장률은 3.7%로 한은의 전망치인 연 4.3%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한은의 금리정상화 의지도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주변국이 하나 둘씩 통화완화 기조로 선회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독자적인 금리정상화를 수행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물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은 금리인하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9%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처음 3%대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절대 수준은 여전히 매우 높다. 아직은 금리인하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힘을 얻는 대목이다. 가뜩이나 물가안정 실패에 대한 비난이 높은 상황에서 한은은 섣불리 금리를 움직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선제적인 금리인하는 당분간 힘들겠지만 경기둔화가 본격화되는 내년 상반기에는 한은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향후 물가상승 압력이 다소 완화될 것이란 전망도 금리인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박상욱 흥국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유럽발 금융위기 우려에 따른 수요 감소로 원유 등 국제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를 나타냈고 여름철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으로 일시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농산물 가격도 안정세를 나타냈다”며 “공산품 가격은 여전히 높은 상승세를 기록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반지가 상승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파악돼 향후 물가 상승 압력은 높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채지용 기자 jiyongc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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