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로봇이 인간의 위치를 대신하게 된 2020년의 미래, 사각의 링 위에서도 인간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가장 인간적인 스포츠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하기도 한 스포츠인 권투에서 인간들은 퇴출되고, 언제나 '대체될 수 있는' 로봇 파이터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미래 배경에 권투 거기에 로봇이 등장한다는 설정의 '리얼 스틸 Real Steel'은 미끈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요리된 공상과학(이하 SF) 영화의 전형일 것 같다. 게다가 포스터에는 '트랜스포머 Transformers'를 연상시키는 우락부락한 로봇과 '엑스맨 X-Men'의 '울버린' 휴 잭맨이 등장하고, 결정적으로 '리얼 스틸'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인간미와는 180도 거리가 있다.
예상은 시작부터 틀렸다. '디스토피아' 스타일의 미래 도시가 아닌, 석양이 지는 거대한 평원 위를 낡은 트럭이 유영하듯 달린다. 게다가 BGM(백그라운드 뮤직)은 20세기 느낌의 감미로운 컨트리 음악이다. 도무지 SF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할리우드의 두 마이더스의 손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로버트 저멕키스가 제작한 '리얼 스틸'이 앞으로 나아갈 길은 영화의 초반 감지된다. 전직 복서 출신으로 이제는 로봇 권투 경기의 3류 프로모터로 근근이 살아가는 찰리(휴 잭맨 분)가 존재도 알지 못했던 어린 아들 맥스(다코타 고요 분)와 '순전히 돈 때문에' 함께 지낸다는 설정은 '리얼 스틸'을 공상 과학 장르의 껍데기를 두른 가족 영화로 보여지게 한다.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클래식 '챔프 The Champ'와 더스틴 호프먼ㆍ톰 크루즈 콤비의 로드 무비 '레인맨 Rainman'이 저절로 떠오른다. 거기에 고철 덩어리 로봇이 최강 챔피언과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는 내러티브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록키 Rocky'와 정확히 일치한다.
과장해서 백만 번쯤은 만들어진 익숙한 이야기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전개의 영화지만 '리얼 스틸'은 SF적인 요소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이를 만회한다. 8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창조한 다양한 형태와 개성, 매력의 '리얼'한 로봇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리얼 스틸'은 로봇에 열광하는 10~20대 젊은 관객들의 관심을 자극한다. 또한 1980년대를 풍미한 권투선수 슈가 레이 레너드의 실제 경기 장면을 재료로 모션 캡쳐와 새로운 촬영 방식을 도입해 창조한 로봇들의 움직임은 실제 권투 선수의 그것처럼 정교하고 세세하며 '인간적'이다. 비정한 아버지와 버릇없는 아들이 서로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도 휴 잭맨과 다코타 고요의 놀라운 화학 반응 덕분에 무척이나 효과적이다. 근사한 볼거리와 가슴을 치는 감동을 안기는 이야기가 공존하는 '리얼 스틸'은 할리우드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시키는 모범적인 '스필버그' 표 영화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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