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부유한 집안의 딸, 공신(공부의 신), 서울대 졸업, 판사 출신, 고속성장한 정치인'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의 엄마, 탤런트 정치인이란 냉소를 듣는 여성'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선출된 나경원 최고위원에게는 이렇게 느낌이 전혀 다른 수식어가 붙는다.
나 후보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주류의 삶을 걸어온 것은 사실이다. 나 후보의 아버지는 1973년 홍신학원을 설립한 후 화곡중, 화곡고, 화곡여상을 개설했다. 밖에서는 나 후보를 '사학재벌의 딸'이라 부른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을 놓쳐본 적 없던 그는 1982년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법대 동기생인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이나 진보진영 대표인사인 조국 서울대 교수와는 전혀 다른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는 비운동권이었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남편 김재호 판사와는 1988년 결혼했다. 나 후보는 식을 올린지 4년 후인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판사로 활동하던 그는 2002년 9월,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 정책특보로 정치권에 몸을 담았다. 여성판사의 멘토와 같았던 자유선진당 이영애 의원의 권유로 이뤄진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이후부터 탄탄대로였다. 이회창 후보 낙선 이후 잠시 변호사 개업을 했지만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2004년 17대 국회에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입성, 대변인으로 활약하며 빼어난 미모로 국민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18대 총선에선 당 지도부는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한 그를 서울 중구에 전략공천했다. 보란듯이 '민주당 바람'을 차단하며 당선된 그는 지난해와 올해 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여의도 입성 10여년만에 대선주자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거물 정치인이자, 한나라당 역사상 첫 여성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하지만 이런 나 후보에게도 비주류의 삶이 공존한다. 그는 다운증후군을 앓고있는 고3 딸을 키우는 엄마다.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 가진 첫 아이로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뒷바라지를 해왔다.
딸의 입학 신청을 거부하는 초등학교 교장에 맞서 교육청을 상대로 끈질긴 투쟁을 해 결국 딸을 학교에 보낸 이야기는 유명하다. 의원이 된 후 국회에 장애아인권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아무리 바빠도 그는 휴대폰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딸 아이와 문자메시지를 수시로 주고받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에 나 후보에 대한 편견을 깬 동료의원들도 많다고 한다. 오세훈 전 시장이 사퇴하던 날, 출마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대답 대신 "엄마 힘내"라는 딸의 문자를 보여줬다.
여자라는 점은 그에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눈에 띄는 미모는 오히려 '탤런트 정치인' '콘텐츠 부재' 논란을 불러왔다. 서울시장 후보로 등판하기 직전까지 발목을 잡은 것도 이것이다. 그러나 나 후보는 이런 점들마저 정치적 자산으로 소화할 줄 아는 영민한 정치인이다. 그는 출마선언에서 '한 남자의 아내, 두 자녀의 엄마'로 자신을 소개하며 "세심하고 부드러운 힘, 알뜰한 엄마의 손길로 서울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심나영 기자 s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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