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지난 25일 공개된 리쌍의 < AsuRa BalBalTa >에 대한 한 온라인 음원 사이트 관계자의 말이다. < AsuRa BalBalTa >는 공개 직후 앨범전곡이 주요 온라인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차트 1위부터 10위를 채웠고, 지난 16일 선 공개 된 리쌍의 ‘TV를 껐네’는 31일 현재도 음원사이트 멜론에서 1위다. 인기 아이돌 그룹들은 공개 직후 강력한 팬덤의 지지에 힘입어 음원 차트 ‘올킬’을 기록하고, 방송 활동을 통해 음원을 계속 차트에 머물게 하곤 한다. 반면 리쌍은 강력한 팬덤이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렵고, 방송 활동은 커녕 타이틀곡 ‘나란 놈은 답은 너다’와 ‘TV를 껐네’가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 차트를 점령했다. 가요계의 기존 성공 방식을 깬 것이다.
음악에서 묻어나는 진솔함이 공감을 불렀다
리쌍의 소속사 관계자는 “우리도 얼떨떨하다. 예능 프로그램이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밝혔다. 리쌍의 히트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특히 리쌍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됐다. 리쌍측 관계자는 “예전 노래들도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그때는 리쌍이 길과 개리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과거 리쌍의 인기가 음원에 대한 인기를 바탕에 둔 것이었다면, 멤버 길과 개리가 각각 MBC <무한도전>과 SBS <일요일이 좋다>의 ‘런닝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뒤로는 리쌍의 노래라는 이유만으로 음원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들이 더욱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예능프로그램 출연만을 리쌍의 성공 이유라고 할 수는 없다. 온라인 음원 사이트 소리바다의 자료에 따르면 ‘TV를 껐네’는 10대의 구매율이 단 3.49%에 불과하다. 반면 20대의 구매율은 31.83%, 30대는 39.69%다. 40대와 50대의 구매율 역시 10대보다 훨씬 높은 16.69%와 6.65%다. 보통 온라인 음원의 주요 구매층이 10대와 20대로 알려진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리쌍의 소속사 관계자는 “앨범의 각 곡마다 사랑, 이별, 방황했던 과거에 대한 회상 등 콘셉트를 두고 인생에서 우러나온 솔직한 고민과 진솔한 삶을 담은 것이 주효한 것 같다”면서 “실제로 앨범 반응을 모니터링 해보면 성인층에서 ‘가사가 내 얘기 같다’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성인들에게 공감을 얻으면서 실질적인 음원 판매가 이뤄진 셈이다.
앨범 구매층이 돌아온다
리쌍의 노래가 타이틀곡 한 곡만 히트하지 않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한 음원 사이트 관계자는 “과거 가요계의 황금기 때 음반을 구매하던 기억이 남아 있던 층이 음원 구매층으로 돌아서면서 앨범 단위로 음원을 구입하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리쌍의 소속사 관계자 역시 “선 공개된 'TV를 껐네’를 구매한 분들이 다른 음원들도 구입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오케스트라나 리얼 악기들을 많이 사용한 것”을 성공 이유중 하나로 꼽는다. 성인들이 리얼 악기를 많이 쓴 곡들에 대해 “음악이 가볍지 않고 구매 가치가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 전자음을 배제한 리얼 악기와 어쿠스틱, 혹은 아날로그적인 느낌은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열풍이나 2NE1의 ‘Lonely’ 등 올해 가요계의 중요한 트렌드 중 하나였다. 특히 이런 트렌드는 ‘나가수’ 등으로 다시 가요계에 관심을 갖게 된 30대 이상의 세대가 적극적으로 주도했고, 리쌍은 가사와 사운드 모두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음악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가요계의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까
그래서, 리쌍의 믿기지 않는 성공은 음원 시장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 2000년대 중·후반 가요계는 음반 시장의 몰락을 음원 시장이 대체, 긴 호흡을 가진 앨범 대신 디지털 싱글과 미니 앨범 형태의 음원들이 주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한두곡을 발매하는 디지털 싱글은 과거보다 훨씬 더 상업적 성공을 원할 수 밖에 없고, 전자음이나 특정 멜로디의 반복으로 강한 자극부터 주고 보는 이른바 ‘후크송’ 등이 유행한 것도 이 시점부터다. 반면 앨범 한 장을 일관된 흐름으로 보고 노래를 쓰는 뮤지션들은 활동조차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적은 <10 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앨범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부터 고민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리쌍의 앨범 수록곡이 모두 좋은 반응을 보이는 건 디지털 음원 시장에서도 여전히 앨범 단위로 곡을 소비하고, 이런 방식으로 음악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를 원하는 소비자층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물론 리쌍이 예능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역설적으로 리쌍처럼 30대의 이야기를 하는 성인 취향의 뮤지션들도 자신들을 알릴 창구만 있다면 자신들의 음악도 얼마든지 알릴 수 있다는 증거다. 이적과 정재형이 <무한도전> 출연 이후 그들의 음악에도 큰 관심이 쏠리게 된 사실은 중요하다. 어쩌면 가요계가 아이돌 중심으로 흘러간 건 대중이 아이돌만 선택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돌이 미디어를 통해 소비되는데 최적화 돼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최근 리쌍의 성공은 지금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 알려야할지에 대해 고민해야할 시기임을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10 아시아 글. 김명현 기자 eighteen@
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