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모두가 사찰음식을 '건강음식'으로 생각하지만 그 맛에 대해서는 먹어보지도 않고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많다. 식단만 봐도 그렇다. '사찰음식' 하면 육류나 젓갈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풀잎'만으로 식단이 구성된 '산채 비빔밥' 정도를 떠올린다. 더욱이 불교에서 사용을 절대 금하는 마늘, 파, 달래, 부추, 흥거, 등 일명 다섯 가지 매운 채소인 '오신채(五辛菜)'도 절대 찾아볼 수 없다. 상황이 이러니 사찰음식은 유독 자극적이고 매운 맛을 즐기는 한국인들의 입맛과는 완전히 평행선을 달릴 것 같다.
그러나 '발우공양'의 음식들은 우리가 기존에 '사찰음식'에 대해서 가진 편견들을 여지 없이 깨준다. 건강도 챙기면서 음식의 본질인 맛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건너편에 위치한 '발우공양'은 대한불교 조계종이 직영하는 유일한 사찰 음식점이다. 상호인 '발우공양'은 사찰의 승려들이 식사하는 의식을 뜻하는 말로, '발우'는 승려의 밥그릇을 의미한다. '발우공양'은 '때에 맞는 음식을 먹어라' '제철 음식을 먹어라' '고루 섭생하라' '과식하지 말고 육식은 삼가라' 등 불교 4대 계율서 중 하나인 '사분율(四分律)'의 가르침에 따라 음식을 통해 불교 문화, 교리를 일반 대중과 더 가깝게 하려는 조계종 의지의 발현이다.
'발우공양'은 10합, 12합, 15합 등 사찰 음식을 코스 요리로 내놓는다. 10합은 주전부리와 죽, 샐러드, 전, 쌈밥, 볶음, 탕, 공양(밥, 국, 찬), 후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2합은 여기에 4년산 재배 산삼과 밀전병이 추가된다. 또한 15합은 12합에 연과채와 송이버섯구이, 콩고기 불고기와 '생명을 연장시킨다'는 설화를 가진 울릉도 명물 명이나물 장아찌가 추가된다. 사실 '발우공양'에서 내놓는 메뉴에서는 특이하거나 비싼 양념과 식 재료는 그다지 찾아볼 수 없다. 여느 식당 같으면 절대 '대외비'로 하는 그들만의 '필살' 조리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육류와 오신채, 인공조미료가 완전히 사라진 주방을 채운 것은 제철에 나는 채소와 직접 재배한 콩으로 담근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불교의 교리에 입각한 조리법이다. 사찰에서 스님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무치고 볶고 끓여낸 사찰 음식의 느낌을 '발우공양'에서 경험할 수 있다. 굳이 '발우공양'에서 사용하는 식재료의 효능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90% 이상의 식재료들은 모두 서울 근교 텃밭에서 제초제 사용 없이 재배한 유기농 채소들이다.
기자가 '발우공양'에서 시식한 메뉴는 완두콩 감자국수와 더덕샐러드, 삼색전, 계정혜삼합, 능이초회, 산삼과 마구이, 버섯강정, 송이누룽지탕, 연잎밥, 국과 찬, 후식으로 구성된 12합 '법륜지상'이다. 하지만 각 메뉴들은 제철에 나는 채소를 이용해 계절마다 조금씩 변화한다. 예를 들어 송이누룽지탕은 7월부터는 골다공증과 변비 예방에 특효가 있는 머위나물과 고혈압에 좋은 들깨가 합쳐진 머위들깨탕으로 교체되는 식이다.
먹기 전 '보기는 좋지만 맛은 별로일 것'같았던 확신은 에피타이저인 완두콩 감자국수부터 완전히 무너졌다. 유기농 완두콩을 갈아 냉 육수를 만들고 거기에 가늘게 채친 생 감자를 찬 물에 담궈서 전분기를 뺀 후 국수로 완성한 완두콩 감자국수는 그 어디서도 맛본 적 없는 놀라운 고단백, 저칼로리 음식이었다. 죽순감자전과 흑임자전, 고추장떡으로 구성된 삼색전은 식감과 색감을 골고루 살리며, 송이버섯, 표고버섯과 함께 3대 버섯으로 꼽히는 능이버섯을 더해 한국인들이 즐기는 매콤한 고추장 양념으로 초회를 만들어 낸다. 채소만으로 속을 빼곡히 채운 절집 만두와 두부숙회, 쌈밥으로 구성된 계정혜삼합은 고추간장소스와 곁들여 먹으면 입 안에 청량한 기운이 절로 돈다.
한방에서 '약선' 재료로 꼽히는 마의 변신도 놀랍다. 마를 프랑스 바게트 빵처럼 잘라 불에 살짝 구워낸 마 구이를 자연 유자청과 함께 먹는 맛은 근사했다.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우려 낸 물에 된장을 풀어 끓여낸 된장국과 무신채 김치 등 6개의 찬과 함께 먹는 연잎밥 식사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젓갈과 파, 마늘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담근 무신채 김치의 맛. 태양초 고춧가루와 매실 농축액과 과일 등의 천연 재료를 사용해 겉절이 김치의 맛과 비슷한, 청량한 맛을 낸다.
50% 정도 소금을 덜 사용한 저염식으로, 인공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발우공양'의 음식은 MSG에 익숙한 사람의 혀에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에피타이저에서 후식까지 '발우공양'의 모든 음식을 다 맛보고 나면 몸에서 나쁜 기운이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서울 한복판에서 경험하는 산사의 향취, 거기에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다.
우리집은/대안스님(발우공양 대표)
2009년 '발우공양'이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총 책임자로 근무 중인 사찰음식 전문가 대안스님은 생명 존중의 마음을 기본으로 하는 사찰 음식을 일반 대중에 소개하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표한다. '발우공양'을 주로 찾는 사람들은 불교 신자들이지만, 점차 종교와 무관하게 고객 층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고 그는 덧붙였다. 조계사 건너편 템플스테이정보센터 5층에 위치한 1호점 외에도 같은 건물 2층과 목동 국제선센터에 2호 점과 3호 점이 영업 중이다. '발우공양'이 코스 요리 전문 식당이라면, 2호 점은 단품, 3호 점은 가족 단위 고객들을 겨냥해 세트 요리를 내놓는다. 총 17개의 테이블, 68석의 '발우공양' 1호 점은 100% 예약제로 운영되며, 매년 1억 원에 육박하는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예약하지 않고 매장을 찾으면 식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가끔 자극적인 식 재료와 조미료에 익숙한 몇몇 고객들로부터 음식 맛이 심심하다는 불평도 있기는 하지만, 눈과 마음, 몸으로 사찰 음식의 진정한 매력을 보고 느낀다는 고객들이 대부분이라며 대안스님은 자랑스럽게 밝혔다.
자문위원은/이현규 한양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마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식용되어 온 재료다. 마주스, 마전, 마죽, 마구이 등의 다양한 조리 방법으로 섭취되는 마는 생식 섭취도 가능하며, 감자, 고구마와 유사한 질감이다. 살짝 불에 구워내 유자 청을 곁들인 '마구이'는 영양소의 파괴도 최소화하면서 '무미'한 마의 맛도 살려주는 요리다. 한방에서 산약이라 칭해지는 마는 콜레스테롤 저하효과, 항당뇨, 혈당강하, 항비만 및 배변 증대활성 등에 큰 효과가 있다. 또한 밥이나 술, 차, 떡, 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음용하는 연잎은 녹차의 20배 이상의 칼슘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연잎 추출물에는 다량의 항산화물질(주로 폴리페놀)이 있다. 분말 형태로 섭취했을 때 혈중 지질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학계 보고도 있다. 건강한 웰빙 식품의 대표 격인 식 재료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사진_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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