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넘어 다른 분야들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사람들은 남들의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내고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남들끼리 경쟁을 붙여놓고는 누가 우세한지 구경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분야를 불문하고 개인적 라이벌 구도를 활용한 이벤트가 종종 돈이 되곤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라이벌 관계가 항상 외부적 요인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스포츠에서는 직접 맞부딪히고 경쟁할 수밖에 없는 관계 속에서 서로를 극복해야만 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고, 그러다 보면 더러는 당사자들 간의 실제적인 관계 악화가 초래되는 경우도 있다(올리버 칸과 옌스 레만을 떠올리면 알기 쉽다).
축구 세계의 라이벌 관계들에도 여러 다양한 유형들이 존재해왔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흥미롭고도 적절한 유형은 역시 ‘동시대의 최고 대 최고’ 유형의 관계다. 시대를 가로질러 라이벌이 되어버린 ‘펠레 대 디에고 마라도나’와 같은 사례는 사실상 비교 자체가 비합리적인 면이 있고, 누가 더 나은가에 관한 소모적 논쟁이 어쩌면 영원히 계속될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펠레와 마라도나가 각자의 시대에 정확하게 알맞은 호적수를 지니지 않을 정도로 위대한 선수들이었기에 일어나는 비교임에는 틀림없지만 말이다.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펠레 대 마라도나’의 경우와는 달리, ‘동시대의 최고 대 최고’ 유형의 라이벌 관계로서 축구사가들에 의해 첫 손꼽혀온 사례는 다름 아닌 ‘요한 크라이프 대 프란츠 베켄바워’다.
‘크라이프 대 베켄바워’는 실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최고의 라이벌로 꼽힐 만한 최적의 조건들을 구비하고 있었다. 1947년생 크라이프와 1945년생 베켄바워는 정확하게 동시대의 슈퍼스타였고, 실전에서 맞대결을 펼쳤으며, 같은 리그에서 뛴 적은 있지만 같은 팀에서 동료로 뛴 적은 없다. 당대 ‘유럽 골든볼’에서도 둘은 거의 언제나 경합을 펼쳤는데 크라이프가 세 차례, 베켄바워가 두 차례 골든볼의 주인공이 됐다.
공통점도 많다. 크라이프와 베켄바워는 모두 현대 축구사의 가장 중요한 사조인 ‘토털 풋볼’의 기수들이었다. 크라이프는 아약스와 네덜란드에서 당대 가장 세련된 토털 풋볼을 구현해낸 ‘그라운드의 사령관’이었고, ‘리베로의 대명사’ 베켄바워 또한 네덜란드보다 경직된 스타일의 독일 축구에 토털 풋볼의 색채를 가미했던 주역이었다. 기본적인 포지션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둘은 모두 그라운드 전체를 누비는 지휘관, 전술사적 혁명가로서의 공통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공격의 테크닉 면에서 틀림없이 더 화려하고 절묘했던 크라이프였지만, 베켄바워도 수비수의 한계를 초월한 다재다능함을 선보였다. 역대 최고를 다툴 법한 축구 지능, 경기를 읽는 시야와 같은 부문에 있어서도 둘은 비슷하다. 각각의 소속 클럽에서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일궈낸 업적 면에서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 세월이 흘러 지도자로 변신한 후에는 크라이프는 챔피언스리그를, 베켄바워는 월드컵을 제패함으로써 ‘지도자로서도 성공한 슈퍼스타’의 대명사들이 되었다.
닮은 점도 많은 그들의 트로피 진열장에 결정적인 차이를 발생시킨 것은 맞대결로 펼쳐진 월드컵이었다. 당대의 전술적 사조를 반영하는 한 판으로 축구사에 아로새겨진 197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역대 최고를 다툴 정도로 훌륭한 실력을 뽐냈던 네덜란드는 예상과 달리 서독에 역전패, 결국 월드컵을 들어올린 것은 크라이프가 아닌 베켄바워였다. 베켄바워는 이를 두고 “그가 더 나은 선수였다. 그러나 월드컵을 차지한 것은 바로 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서독의 월드컵 우승에도 불구하고 그 해의 유럽 골든볼은 크라이프에게 돌아갔는데, 그의 자존심에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을 법하다.
최근 몇 년에 걸쳐 지구촌 언론과 온라인을 뜨겁게 달궈온 ‘리오넬 메시 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구도야말로 ‘크라이프 대 베켄바워’ 이래 가장 극명하고도 흥미로운 경쟁 관계를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1987년생과 1985년생으로서 정확히 동시대에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메시와 호날두는 각각 최고 클럽들의 에이스로서 앞으로도 계속 격돌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전문 골잡이 유형이 아니면서도 역대 위대한 스트라이커들을 무색게 하는 놀라운 득점 기록들을 매 시즌 반복하고 있다는 것 또한 둘의 공통점이다.
어쩌면 호날두에겐 “하늘은 왜 나를 낳고 다시 메시를...”이라는 불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두 선수의 도전과 응전의 역사는 훗날 ‘크라이프 대 베켄바워’ 사례 이상으로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게 될 법하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축구사를 통틀어 가장 뜨거운 맞대결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한 준 희 (KBS 축구해설위원 / 아주대 겸임교수)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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