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하루 전인 지난 2월16일이다. 그는 이 날 부산저축은행의 한 지점장한테서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다른 거 묻지 말고 일단 돈을 좀 빼가시라"는 간곡한 권유였다. A씨는 예금된 30억원 가운데 15억원을 인출해 시중 은행에 넣어뒀다. 그는 당시 지점장한테서 영업정지 소식은 듣지 못했고, 워낙 다급하게 권하는 바람에 일단 시키는대로 돈을 찾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영문은 몰랐지만, 내 돈 찾는 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몰랐다"는 건 김씨 주장일 뿐이었다. 검찰은 지난 4월 말부터 영업정지 직전에 돈을 빼간 예금주들 수사를 시작했고 김씨도 수사 선상에 올랐다. A씨는 "영업정지 정보는 전혀 듣지 못 했다고 검찰에 끊임없이 말했지만 지점장과의 통화내역, 통화 시점이 영업정지 하루 전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A씨가 부산저축은행과 거래를 시작한 건 약 3년 전부터다. 이전까지는 서울의 시중은행 2~3곳하고만 거래를 하고 있었다. A씨는 "약 10년째 친분을 이어오고 있는, 부산지역에 연고를 둔 한 현역 국회의원의 권유로 부산저축은행과 거래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거래를 권한 의원이 부산저축은행 측과 각별한 관계였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면서 "탄탄한 은행이라는 말을 듣고 때로는 수천만원씩, 때로는 몇 억원씩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검찰이 자신과 해당 의원, 이 의원과 부산저축은행 측 또는 예금인출을 권한 지점장과의 유착 여부도 조사중인 것 같다고 전했다. 부산지역 유력가들이 부산저축은행 투자 유치에 관여했는지 여부 또한 검찰이 들여다보는 대목인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A씨는 "예금을 미리 인출해간 일이 이렇게까지 큰 파장을 몰고올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 했다"면서 "비리 의혹의 연결고리 한 축에 내가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나를 한없이 비참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든다. 죽고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소 건설 시행업자인 그는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일대에서 사업 3~4개를 진행중이었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고 검찰에 불려다니면서 사업은 고꾸라지는 모양새다. A씨는 "부산저축은행에서 인출한 돈을 원래 거래하던 시중은행에 넣어뒀는데, 수사 관계로 그 돈을 포함한 모든 예금을 인출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가뜩이나 자금 융통이 어려워 결제가 밀려있는 상황에서 아예 돈을 꺼내 쓰기도 어렵게 돼 이미 사업 하나는 사실상 중단됐고 나머지 사업도 유지를 하기가 매우 어려워보인다"고 토로했다.
A씨는 또 "잠을 제대로 자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면서 최근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다른 예금주들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를 수차례 강조했다"면서 "피해자라는 생각이 강해 처음에는 분하고 억울했지만 돈을 인출해보지도 못하고 날린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비워보려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A씨의 설명에 관해 검찰 관계자는 "특정인이 수사를 받고 있는지 여부 및 수사 상황은 확인해줄 수 없는 내용"이라면서 "모든 의혹을 가급적 명백하게 밝혀낸다는 원칙에 따라 성역없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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