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부처가 부처를 묻다/ 스티븐 미첼 편저/ 권지연 김영재 옮김/ 물병자리/ 1만3800원
불교란 무엇이 아닌가/ 베르나르 포르 지음/ 김수정 옮김/ 그린비/ 1만5000원
부처님 오신 날인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조계사에 외국인 두 명이 들어섰다.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이 절 곳곳에 걸린 연등을 구경하고 사진 찍기에 바쁜 그 때, 이 두 사람은 조용히 봉축 법요식을 지켜봤다. 법요식이 끝나갈 때쯤 자리를 빠져 나온 두 사람은 대웅전 앞마당 한 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발이 성성한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은 여전하신가?" 다른 한 남자가 답했다. "숭산 스님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게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하셨는데, 아마도 전 그 어려운 일을 이뤄낸 듯 싶습니다."
백발 남자의 물음에 답을 한 이 남자는 1972년 불교를 전하러 미국으로 떠난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간직한 미국인 스티븐 미첼이다. 번역가이자 명문집 편집자인 그는 숭산 스님이 미국에 머물면서 제자들과 나눈 법문과 편지 등을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기억한다. 1976년 숭산 스님의 가르침 100가지를 손수 정리해 책을 펴낸 덕분이다. 그런 그가 세계적인 불교 석학으로 꼽히는 베르나르 포르 콜럼비아 대학 종교학과 교수와 마주 앉았다.
백발의 베르나르 포르 교수는 프랑스 출신으로 1984년 파리 제7대학에서 불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87년부터 18년 동안 스탠퍼드대학에서 종교학을 가르쳤다. 동양문화의 중심에 자리한 불교, 이 두 글자를 여느 동양인들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이들은 부처님 오신 날에 서로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두 사람이 전 세계에 불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리려는 각자의 진심을 나누고 이를 한 번 더 다짐했을 거라는 것이다.
베르나르 포르 교수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던 스티븐 미첼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숭산 스님이 선원을 찾아 온 제자들에게 강조한 건 '모를 뿐'이라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었다"며 "자신이 가진 생각과 좋고 싫음을 다 버리고 오직 모른다는 마음으로 깨달음을 쫓으라는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숭산 스님은 달을 보면서 '달'이라 부르고 달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예 '저것은 달이구나'하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어떤 생각을 하기 이전 마음이 바로 우주만물의 실체이며 곧 불교의 가르침인 색즉색 공즉공(色卽色 空卽空)이라는 것이다.
스티븐 미첼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베르나르 포르 교수가 "'불교는 무(無)를 가르치는 허무의 종교'라는 생각을 하는 서양인들이 의외로 많다"며 말을 받았다. 베르나르 포르 교수는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불교에 관한 글을 남긴 거의 모든 이들이 이 같은 주장을 했기 때문에 지난 세기 초까지만 해도 불교의 가르침은 허무의 가르침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특히 부처가 도달한 궁극적인 경지를 무로 보았고, 그의 제자인 쥘 바르텔레미 생틸레르는 불교의 근간을 절멸이라 말하기도 했다. 쇼펜하우어 역시 헤겔과 마찬가지로 불교를 무신론적 종교로 여겼다. 아직도 불교나 불교의 가르침을 이처럼 잘못 이해하는 서양인들이 많다는 게 베르나르 포르 교수의 말이다.
스티븐 미첼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숭산 스님이 혈혈단신 미국으로 떠난 이유였던 것 같다"며 "숭산 스님은 '한국 불교'를 고집하지 않고 '불교'를 가르치려 애썼다"고 했다. 숭산 스님이 미국을 비롯한 일본, 영국, 브라질 등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어떻게 전했는지는 숭산 스님의 이 말에 그대로 나타난다. '나는 오직 불교의 뼈대만 가르칠 뿐이다.' '각각의 문화가 천천히 그들 자신의 불교를 살찌울 것이다.' 1966년 일본 도쿄에 홍법원을 세우면서 해외 포교에 나선 숭산 스님은 1972년 미국 포교길에 올랐고, 이후 수년 동안 미국에 머물며 불교를 처음 접한 외국인 제자들과 다른 나라 스님들에게 불교를 전했다. 그렇게 전 세계 각국을 다니며 30여개가 넘는 나라에 120여개의 선원을 세운 숭산 스님은 2004년 11월 서울 화계사에서 입적했다.
베르나르 포르 교수와 스티븐 미첼의 가상 대화에서 오고 간 더 많은 말들이 궁금하다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다시 찍혀 나온 이들의 책 한 권씩을 권한다. 베르나르 포르 교수가 서양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불교를 바로잡으려 무엇이 불교가 아닌지를 설명해주는 '불교란 무엇이 아닌가-불교를 둘러싼 23가지 오해와 답변'(그린비 펴냄)과 스티븐 미첼이 펴낸 '부처가 부처를 묻다-숭산 큰스님의 100가지 가르침'(물병자리 펴냄)이 그것이다. 두 권 모두 프랑스와 미국에서 먼저 출판된 책을 다시 한국어로 옮겨 펴낸 것이다. 원제는 각각 'Le Bouddhisme(2004)'과 'Dropping Ashes on the Buddaha(1976)'다.
성정은 기자 jeu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