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자 오히려 역차별
[아시아경제 지선호 기자] 한자 투성이 감사보고서가 우리나라 투자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일부 기업이 한글을 같이 쓰지 않고 한자위주로만 감사보고서를 제출해 내용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이들 기업은 대부분 일본인 투자자들이 지분참여하고 있는 곳이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29일 제출된 KPX케미칼의 연결감사보고서는 조사 및 동사, 영어식 표현을 제외한 나머지 내용이 모두 한자로 작성돼있다.
KPX케미칼의 연결감사보고서 일부를 들여다보면 "當期末과 前期末 現在 從屬會社의 現況은 다음과 같으며, 當期 및 前期 中 從屬會社의 變動은 없습니다"로 돼있다. 우리말로는 "당기말과 전기말 현재 종속회사의 현황은 다음과 같으며, 당기 및 전기 중 종속회사의 변동은 없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중의적이거나 생소한 단어가 사용된 것도 아닌데 한자로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이유는 뭘까? KPX케미칼은 일본인 투자자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감사보고서를 한자로 작성해왔다고 설명한다.
KPX케미칼 관계자는 "처음 회사가 세워질 때 국내 자본과 일본 자본이 50대50의 합작형태로 설립됐기 때문에 한자로 쓴 감사보고서를 작성해왔다"고 밝혔다. 한자 사용에 익숙한 일본인 투자자들이 별도의 해석 없이 감사보고서를 볼 수 있도록 한 것. 한자 사용이 줄은 지금에는 국내 투자자가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 상황이다.
현재 7개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 KPX그룹은 KPX케미칼 이외에 지주사인 KPX홀딩스도 한자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KPX케미칼은 "초창기에 국내와 일본 지분이 50대50였지만 지금은 일본의 직접경영참여 지분이 13%대로 낮아진 만큼 앞으로는 한글 감사보고서도 작성해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롯데그룹 역시 몇 몇 계열사가 한자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확인된 롯데그룹 계열회사 50곳 중 롯데건설, 롯데리아 등 17곳이 한자로 된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국내 상장돼 있는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등 7곳은 한글로 감사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한자 감사보고서' 제출은 현행 규정상 위반사항은 아니다. 한글작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한자 사용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한글로 표기된 감사보고서를 별도로 제출할 의무도 없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사업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듯이 감사보고서도 투자자들이 반드시 살펴야하는 기업 자료인 만큼 한글 감사보고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업이 한자 감사보고서 제출을 고집한다면 투자자 편의를 위해 한글 감사보고서 제출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선호 기자 like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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