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정유업계의 '입'을 대신하는 대한석유협회 회장직 돌연 교체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차기 회장에 국회의원 출신의 정부쪽 인사가 내정되면서 '업계 길들이기'에 고삐를 죄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짙다.
가뜩이나 물가인상 주범으로 몰려 대규모 손해를 감수하고 기름값 인하를 단행했던 정유업계는 계속되는 압박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석유협회장의 예상밖 교체는 기름값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2월 한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연임이 유력시됐던 오강현 현 석유협회장이 "국내 기름값이 선진국보다 비싸지 않다"며 소신 발언에 나섰다가 괘씸죄에 걸린 것.
기름값 잡기에 사활을 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오 회장의 발언에 즉각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결국 연임 보류에 이어 교체까지 감행됐다. 정부 정책에 반하는 '말 한마디'가 오 회장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석유협회는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를 회원사로 둔 정유업계 대표 이익단체다. 하지만 정부쪽 인사를 수장직에 앉히면서 이익단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정유사의 입장을 대변할 자리를 뽑는 데 되레 정부가 강력한 입김을 행사한 탓이다.
협회 측은 회장직이 정유업계와 정부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에 '방점'을 찍은 것이라 해명했지만, 낙하산 인사라는 의혹을 쉽게 떨치긴 힘들다. 물가와 밀접한 석유산업 협회 수장에 고분고분한 인사를 앉혀 정책 실행의 부담을 덜겠다는 정부 계산법이 훤히 보일 정도다.
이번 석유협회 수장의 전격 교체는 물가 잡기에 혈안이 된 정부가 어떤 자세로 '기업 길들이기'에 나서는지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칼날'을 빗겨갈 수 없다는 교훈은 덤이다.
서소정 기자 s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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