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그의 앞에 선 건 고개를 떨군 15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소년이 스쿠터를 상습적으로 훔친 절도범이라는 사실보다 그를 안타깝게 만든 게 있었다. 형사처벌 대상이 안되는 나이를 갓 넘긴 소년의 앳된 얼굴을 보며 그는 '이 아이가 법에 대한 교육을 미리 받았다면 이 같은 범죄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는 고홍석(41ㆍ사진) 서울고등법원 판사다.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9년 28기로 연수원을 수료한 고 판사가 어린 소년들과 인연을 맺은 건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원지법에서 영장전담 판사를 지낸 고 판사는 자연스레 소년범들의 영장을 접하게 됐다. 고 판사는 1년 동안 성인 범죄자를 비롯한 소년범들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고, 때론 소년범들의 재판을 맡아 하기도 했다.
소년범 재판에 출석하는 피고인은 주로 친구들을 때리거나, 집단 따돌림을 주도하거나, 스쿠터를 훔친 아이들이었다. 분명 잘못은 했지만 '범죄자'로 낙인찍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게다가 가정환경이 안좋아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소년범들을 법정에 불러 세워 피의자 심문을 하면서, 소년범들과 관련된 기록을 수도 없이 들여다보고 직접 재판을 하면서 고 판사가 느낀 건 단 하나였다. 어린 아이들에게 법이 무엇인지, 왜 법을 지켜야하는지를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고 판사는 이와 관련해 "어려서, 법을 잘 몰라서 호기심에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이 많다"며 "이들에게 법을 왜 지켜야 하는지 알려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범죄를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소년범들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 전했다.
고 판사가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찾았다. 그는 '법의 날'인 25일 오전 이화여자대학교 부속초등학교를 방문해 5~6학년 학생 240명을 대상으로 '법과 재판 이야기'를 들려줬다. 법이 무엇인지, 법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재판에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등을 학생들과의 문답 형식으로 설명해나가는 고 판사의 얼굴엔 내내 웃음이 가득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법정에서 마주했던 소년범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약속한 강연 시간이 끝나가자 고 판사는 "시간이 없으니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얘기하겠다"며 "14세 미만은 형사미성년자로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소년법에 따라 어린이도 보호처분이라는 벌을 받을 수 있으니 항상 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소년범들을 대할 때 느꼈던 그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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