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의 와타나베(마츠야마 켄이치)에게는 절친한 친구 기츠키와 그의 연인 나오코(키쿠치 린코)가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기츠키가 자살한다. 열아홉, 도쿄의 대학생이 된 와타나베는 우연히 공원에서 나오코와 조우하고 두 사람은 매주 산책을 하며 점점 가까워진다. 비가 조용히 내리던 나오코의 스무 살 생일. 삶보다 죽음을 먼저 알게 된 두 청춘은 섹스를 한다. 그 일이 있은 후 나오코는 홀연히 사라지고 얼마 후 요양원에 있다는 편지를 보낸다. 소울메이트와도 같았던 기츠키의 죽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하게 나오코를 잠식해 결국 현실세계에 대한 면역력을 약하게 만든다. 혼란에 빠진 와타나베 앞에 나오코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여자 미도리(미즈하라 키코)가 나타난다. 스트레이트하게 다가오지만 깃털처럼 가볍게 머무는 미도리가 싫지는 않다. 청춘의 여름과 가을은 무료하고 더디게 흘러가지만, 요양원에 머물고 있는 나오코와 현실의 미도리 사이를 오가는 와타나베에게도 어느덧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10_LINE#>
오래된 유명 우동집에서 쌀국수 먹고 돌아오는 느낌
영화 <상실의 시대>를 뒤 덮고 있는 이름들의 무게는 상당하다. 원작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물론 이거니와 원제이기도 한 ‘노르웨이 숲’의 전설적인 밴드 비틀즈,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 <씨클로>의 감독 트란 안 홍, 영화음악을 맡은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 게다가 일본 영화계의 새로운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마츠야마 켄이치와 영화 <바벨> 등을 통해 할리우드 배우로 자리매김한 키쿠치 린코까지. 지난 24년간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현실화 되지 않았던 <상실의 시대>의 영화화는 이렇게 무게감 있는 이름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더욱 무겁게 만드는 것은 바로 소설 <상실의 시대>를 읽고 청춘의 한 시기를 보냈던 숫자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어느 시대 어느 청춘들의 이름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상실의 시대>는 각각의 방식으로 기억되어 있을 것이다. 현실의 누군가가 투영된 와타나베와 나오코 혹은 미도리의 생김새와 향기, 소설을 한 장 한 장이 넘기던 시절의 공기와 색. 물론 그것은 유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모든 영화들이 떠안아야하는 숙명 같은 무게이겠지만 “10대 끝에서 20대 초기에 걸친 배 멀미의 시대”에 대한 강렬한 기록이었던 <상실의 시대>는 유독 개인적인 기억이 뒤엉켜 있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그 각각의 기억들과 싸우려 하지도 혹은 기억을 잊을 만큼의 새로운 이야기도 들려주지 못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는 작가가 누차 강조했던 것처럼 분명 ‘연애소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대를 둘러싼 일본사회의 거친 숲을 지나지 않고 돌아가면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의 소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는 “안드로마케의 비극 따위를 이야기 하는 것 보다는 심각한 문제”가 캠퍼스 밖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대사와 어지러운 대학풍경을 잠시 스케치 하는 정도로 1960년대 말 일본을 설명하는데 그친다. 또한 ‘나’가 중심이 되었던 소설의 시선을 나오코를 비롯한 여자들에게 돌린 영화적 시도는 “18살과 19살 사이를 무한반복으로 오갈뿐” 결코 한발 더 나아간 해석에 다다르지 못했다. 결국 공동의 상처를 안고 있지만 살아남기로 결심한 남자가 그렇지 못한 여자를 향한 순애보에 가까운 러브스토리, 그것을 눈이 부시도록 탐미적으로 담아낸 영상과 음악만이 화려한 포장지처럼 남았다. 오래 기다렸지만 잘못 배달된 편지를 받아든 느낌, ‘상실의 시대’는 여전히 복원되지 못했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백은하 기자 one@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