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에 몰린 50여 언론을 향한 학생들의 비토(veto)...“자기네 입맛대로 난도질”
[아시아경제 이영철 기자] “기자들은 지맘대로 글 쓰는 개#끼다.”, “제대로 된 기사하나 찾는 것 조차 너무 힘듭니다.”, “비양심적이고 비윤리적인 기자새끼들이 역겹다 못해 토나옵니다.”
카이스트구성원들의 커뮤니티공간 ‘아라’ 에 올라온 글과 댓글 중 언론에 대한 비판의 글들이다.
지난 7일 네 번째 학생이 자살한 뒤 1주일간 50여명의 기자들이 카이스트 이곳 저곳, 안과 밖에서 취재했다.
최근 1주일간 카이스트는 모든 언론의 취재대상이었고 뉴스의 중심이었다. 기사의 대부분은 서남표 총장의 개혁에 문제가 있어 학생들이 목숨을 끊었으며 교수와 학생들은 서 총장의 개혁에 반대하는 행동을 보였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또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다는 식의 기사가 나오면서 침묵하고 있던 학생들까지 ‘아라’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 학생은 “최근 기사들 가관이에요. 우리가 불행합니까? 정신병자취급당해야 합니까? 일부 편협한 시각을 대다수의 의견인양 보도하지 말아주세요”라며 불편한 마음을 나타냈다.
또 다른 학생은 “요즘 언론보면 화나도 못해서 놀랍니다. 특히 진보언론에 대한 실망감을 요즘 감출 수가 없네요. 반 신자유주의 논조로 모든 현상을 설명하더군요”라고 비판했다.
학내 분위기가 어수선하자 학생들은 기자의 취재접근에 대해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물리학과에 다닌다는 김모(22)씨는 “기자들이 자기 입맛에 맞게 기사를 쓰는 걸 보고 이건 아니다 싶다. 인터뷰는 거절하겠다”고 말했다.
바이오및뇌공학과 이모(19·여)씨도 대화를 나누자는 말에 “싫어요”라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13일 저녁 비상총회를 취재한 언론에서도 서 총장의 퇴진운동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예고기사를 내는 등 분위기를 퇴진 쪽으로 몰았지만 학내구성원들은 ‘안정’적인 학교변화를 꾀했다.
학부총학생회 비상총회와 대학원총학생회 모임에서 서 총장의 퇴진이나 사과 등은 논의에서 한 발 물러나 결의되지 못했다. 이런 결과는 일부 학부생이 서 총장의 개혁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학부생들은 이번 총회에서 서 총장의 ‘거취 문제’ 등은 거론조차하지 않았으며 논란이 됐던 차등수업료 폐지와 영어강의 개정 등 나머지 사안에 대해선 의결안건을 찬성, 모두 가결시켰다.
대학원총학생회 모임에선 연차초과 수업료 문제 해결 등 대학원생들의 불만이 이어졌지만 학교에 개선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교협도 이날 낮 혁신비상위 구성을 서 총장에게 제안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퇴진을 요구하는 총회를 계획했으나 서 총장이 이를 수용하면서 퇴진요구도 자연스레 숨게 됐다.
언론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 배경의 하나 가운데 언론에 대한 카이스트 내부인들의 반발이 한 몫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영철 기자 panpan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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