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 김현희 인턴기자, 조유진 인턴기자] "나쁜 사람을 많이 만나세요."
6일 숭실대학교에서 열린 취업 강연회에서 '대학생의 비전과 진로'를 주제로 연단에 선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강연장을 가득 메운 대학생 200여명에게 던진 화두다.
정 위원장은 "공부 잘하고 세련된 사람들은 어려울 때 하나도 도움이 안된다"며 국무총리 시절 세종시를 추진하던 얘기를 꺼냈다. "중앙행정부가 둘로 나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 정 위원장은 '세종시는 잘못된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행정조직은 서로 3-4km 이내에 있어야 하는 데, 둘로 나눠 100km 넘는 곳에 분산하려 했다"며 분명히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도 말했다.
정 위원장은 "세종시로 고생을 많이 했다"며 "서울대에서 30년 넘게 경제학을 가르쳤기 때문에 제자들만 4500명인데 세종시 논의 때 나를 지지하는 글을 쓴 사람 가운데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을 지지해 준 건 술자리에서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싸운 '나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나쁜 사람을 많이 만나라는 건 그만큼 많은 경험을 하라는 뜻"이라면서 "대학시절 가장 필요한 것은 다양한 체험과 사색"이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 명언처럼 책을 많이 읽고, 많은 곳을 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정 위원장의 말이다.
대학생들이 비전을 찾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느냐는 질문에 정 위원장은 "작심하고 적어왔다"며 미리 준비한 종이를 꺼내보였다. 정 위원장이 준비한 것은 거창고의 취업 10계명이었다.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고, 모든 것이 갖춰진 곳 대신 황무지를 택하고, 부모나 아내가 말리는 곳이면 의심하지 말고 가라는 것이 10계명의 주된 내용이었다.
정 위원장은 또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들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조순 교수가 학생들을 과대평가했는지 이 책을 한 학기에 다 마쳤는데, 모르는 부분이 많긴 했어도 그 학기를 지나고 나니 자신감도 생겼고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는 것이다.
한 시간 반에 걸친 강연 끝에 정 위원장은 "국무총리와 서울대 총장을 지내면서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는데 다하질 못했다"며 "세종시 등 선택의 갈림길에서 여러 가지 고민을 했는데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선 늘 궁금함과 회한이 남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정 위원장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우정, 사랑, 여행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마음껏 놀고 즐기되 늘 고민의 끈을 놓지말라"며 강의를 끝마쳤다.
성정은 기자 jeun@
김현희 기자 faith100@
조유진 기자 t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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