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기름값 인하를 위한 '폭탄돌리기'의 끝은 결국 정유사? 3일 오후 SK에너지는 '두 손'을 들었다. 오는 7일 00시를 기점으로 휘발유ㆍ경유 가격을 ℓ당 100원 할인키로 했다.
정부는 즉각 화답했다. 이날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례적으로 휘발유ㆍ경유가격을 인하키로 한 결정에 크게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로써 '기름값이 묘하다'는 올 초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정부와 업계의 책임공방은 일단 1막이 내려졌다. 물가안정을 위해 기업이 총대를 메기로 암묵적인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정유사의 인하 결정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기름값에 고통받던 서민들은 가격 인하 조치가 쌍수들어 환영할 일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일련의 과정들이 마치 '토끼몰이'를 연상케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업계의 두뇌싸움은 올 초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촉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6개 정유사에 대한 대규모 현장 조사에 착수했고, 즉시 지경부를 중심으로 석유제품 가격결정구조를 논의할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다.
'기름값 잡기'를 위해 정부가 속전속결 행보를 보였지만 녹록치 않았다. 막상 파헤쳐보니 연산품 특성상 원가를 내기 쉽지 않은 데다, 정유사 영업이익률도 볼품 없었다. 최 장관이 '회계사'임을 자처하며 계산기를 두드렸지만 소용없었다. 뾰족한 묘수를 찾지 못한 석유TF가 대책 발표를 연기하자 최 장관은 "정유사 자료가 불충분"하다며 정유사의 불성실한 태도 탓으로 돌렸다. 급기야 "이익 난 정유사들은 정부에 '성의표시'라도 해야한다"는 발언으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지난주 마지막 카드가 효력을 발휘했다. 현장 조사 두달 만에 공정위가 정유업계에 '원적지 관리'와 관련한 담합 심사보고서를 발송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1조원대 과징금 부과 가능성도 제기됐다. 결국 SK에너지는 영업일이 아닌 휴일 ℓ당 100원 할인이라는 고육지책을 내놨다. 그만큼 마음이 급했다.
기름값을 잡기위한 정부의 노력은 '용두사미'로 막을 내렸다. 코너로 몰린 기업이 이윤추구에 반하는 '성의표시'로 희생을 감수한 것이다. '묘한' 기름값 잡기가 낳은 '묘한' 해법. 뒷맛은 너무 씁쓸하다.
서소정 기자 s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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