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참여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정통 관료 출신 인사.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활동을 시작으로 문화체육부 차관, 세계도자기엑스포 조직위원회 위원장, 한국관광공사 사장 등을 맡으며 우리나라의 문화 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해 일해 왔다. 2010년 8월부터 제2대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건전한 게임 이용 문화 창달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게임 산업의 덩치는 거인처럼 커졌지만 걸치고 있는 의관(衣冠)이 맞지 않아 게임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를 거북하고 안타깝고 힘들고 좌절하게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게임은 4바퀴가 독립적으로 기능하되 한 틀로 모여 힘차게 전진하는 4륜구동 차량과 같다. 게임생산-게임소비-정책지향-세계시장으로 형성된 생태계가 바로 설 때 비로소 게임은 바람직한 문화로 그리고 강력한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다.
게임 개발은 어떤 문화예술 장르보다 고독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창작의 길이다. 하지만 한국은 게임을 돈벌이 수단 정도로 취급하고 있으며, 폭력성과 선정성이 다소 있다는 이유만으로 훌륭한 게임을 청소년 유해물로 낙인찍거나 개발자들을 흉악범들과 동격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게임 없이 오늘의 문화와 산업을 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의 인식은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리고 게임 개발 공급자들은 무지에 치이고 기득권과 신참 왕따에 당한다고 낙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개척자의 길은 본래 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세계적 문화 강국 반열에 올린 것이 게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게임업계는 보다 더 콘텐츠를 세련되게 다양화하고 기능성 게임과 에듀테인먼트로 다변화하는 등 미래 문화를 창조한다는 소명 속에서 이야기 개발과 R&D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 시간은 게임 편이다.
게임 소비 주권이 바로 설 때, 게임은 신명나는 놀이가 되고 양질의 콘텐츠가 공급된다. 게임 소비가 파행으로 치달으면 게임 시장은 혼돈에 빠지게 된다. 게임 유저는 자기 책임 아래 바람직한 게임 아비투스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게임 소비의 합리화를 위한 시스템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할 국면에 와 있다. 특히 자기제어 능력이 약한 청소년이나 취약계층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 아래 정교한 게임 소비 안전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급하다.
최근 청소년 게임 과몰입 등 문제 해결의 지름길로 셧다운 규제가 거론되는 것이 걱정스럽다. 문화현상의 그림자를 규제의 칼로 삼제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규제가 강하면 강할수록 회피 수단은 더 교묘해지고, 아비투스를 나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창의산업은 무너지게 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게임 산업이 확실한 미래 성장 동력이 되도록 지원하면서, 작은 규제를 통해 소비자의 제어 능력을 키우며,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믿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 게임 산업은 국제무대에서 시련에 처해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의 추격은 질풍노도와 같고, 영세한 규모 때문에 해외 지적재산권의 보호 장치 없이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공들여 개척한 디지털 문화영토가 위축되지 않고 계속 확장되도록 콘텐츠 산업외교가 적극 전개돼야 할 것이다.
서로 따로 움직이지만 고성능을 발휘하는 4륜구동 차량처럼 우리 게임이 몸에 맞는 의관을 갖추면서 무럭무럭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는 운용의 묘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완벽한 규제의 시스템만을 고집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기 쉽다. 네 바퀴 서로 모순을 털어 내며 배려하고 합심해서 건강한 게임 생태계를 만들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문화를 이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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