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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포럼] 과학의 꽃 피울 땅부터 다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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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포럼] 과학의 꽃 피울 땅부터 다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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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공계 인력 양성을 위한 새로운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초중등학교에서부터 퇴직에 이르는 전 생애 주기에 걸친 육성 계획에 5년간 무려 9조8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저변을 확대하고, 대학원생의 역량을 강화하고, 창조형 일자리 창출과 교육 훈련을 지원하고, 글로벌 인력 활용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파격적인 '글로벌 박사 펠로십'과 '대통령 포스닥 펠로십'을 추진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공계 인력 육성을 위한 장밋빛 청사진과 적극적인 투자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노벨상과 막대한 투자를 앞세운 화려한 계획을 마련하기 전에 우리 현실에 대한 확실한 진단과 미래에 대한 정확한 비전이 전제돼야 한다. 잘못된 진단에 따른 처방이나 실현 불가능한 신기루를 쫓는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아무 의미도 없는 '순위'와 '숫자'에 얽매인 육성 계획으로 길러낸 인재가 진정한 창조형이 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우리 청소년들이 재미있는 체험 학습과 영재 교육이 부족해 과학을 외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체험 학습으로 과학을 '쉽고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만들겠다는 잘못된 교육 철학이 과학을 속빈 강정으로 만들어 청소년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청소년 시절의 과학 실험이 재미있었다는 것은 성공한 과학자의 무용담일 뿐이다. 오히려 과도한 체험형 학습이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과학자를 특별히 우대하겠다는 정책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유능한 과학자만이 아니다. 유능한 철학자도 필요하고, 유능한 예술가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분야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충분한 사회적 대우를 받아야만 한다. 과학자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했던 잘못된 관행이다.

이공계 인력 양성의 핵심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과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공유하도록 만드는 일이 돼야만 한다.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뛰어난 창조형 과학자가 등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만에 하나 그런 과학자가 등장하더라도 사회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화려한 청사진을 내놓기 전에 이미 분명하게 드러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목표를 잃어버린 국제화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절실한 시점이다. 과연 우리가 후진국의 젊은이에게 기회를 준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잘못된 제도도 고쳐야 한다. 도무지 명분을 찾을 수 없는 약대의 새로운 제도는 화학, 화공, 생명과학과 같은 인접학과의 학부 교육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다. 올해 처음 시행된 약대의 신입생 선발로 거의 절반 상위권 학생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이공계 학부 교육을 뿌리부터 흔들어버리는 잘못된 제도가 살아있는 한 정상적인 이공계 인력 양성은 불가능하다.


이제 과학에서는 1등만 살아남는다는 잘못된 편견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야 한다. 1등만 인정을 받는 것은 노벨상과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 사회에서는 꼴찌도 1등 만큼이나 과학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당당하게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진짜 유능한 창조형 과학자는 과학문화가 꽃피는 사회에 주어지는 덤이다.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의 학생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파격적인 돈벼락이 아니라 틀에 얽매이지 않은 유연한 제도라는 사실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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