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이 납세 신고를 하기 전에 세무사로부터 검증받도록 한 '세무검증제'가 여기 저기 손질해 누더기가 된 상태로 어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세제개편안의 핵심인 이 제도는 당초 이들 고소득 전문직종의 세금 탈루가 많다고 보고 미리 세무검증을 받도록 의무화하고 검증받지 않으면 10%의 가산세를 물리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검증대상이 연소득 5억원에서 7억5000만원으로 올라가고 가산세율은 절반인 5%로 낮춰졌다. 또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만이 대상이었으나 이를 희석시켜 도ㆍ산매업과 제조업, 숙박업 등 모든 자영업자로 대상을 넓혔다.
겉으로만 보면 대상이 늘어나 '공정' 취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판사, 변호사, 법과대학 교수 등 율사 출신 의원들이 "변호사와 의사 등 특정계층에만 세무검증을 실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거나 "위헌 소지가 있다"고 딴죽을 거는 바람에 물타기가 된 것이다. 특히 조세심사소위 등에서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율사 출신 의원까지 나서 검증제도 완화에 한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세무검증제도를 포함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작년 8월 제출된 후 의사와 변호사 협회의 로비와 반대로 통과가 지연되다 이번에 크게 변질된 상태로 겨우 통과된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말로만 '공정'과 '세무형평'을 떠들지 자신들의 이해 관계가 걸린 사안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고 이념도 팽개치고 행동을 통일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세무검증 제도를 누더기로 만든 이 같은 기재위 의원들의 행태는 최근 행정안전위원회가 정치자금법개정안을 기습 처리한 것처럼 여야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담합한 또 다른 사례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자신의 밥그릇이 걸렸거나 자신들에게 '불편한' 사안이라면 눈치 안 보고 제도를 뭉개거나 적극 고쳐버리니 국회가 불신을 받고 국회의원들이 매도당하는 것이다.
이제 누더기 상태의 세무검증제 마저 율사출신들이 태반인 법사위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세무검증제의 법사위 처리를 국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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