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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교육청 '체벌규정' 氣싸움..법대로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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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체벌? "시행령이 상위규정이라 법리상 문제 없다" 지적
"시행령이 체벌 규정까지? 지자체 존재 의미 사라져" 반론도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성정은 기자] #서울의 어느 중학교 교실. 한 학생이 수업중인데도 주변 친구를 손으로 찌르며 소란을 피우고 있다. 선생님이 "조용히 하고 수업에 집중하라"고 타일렀지만 학생은 말을 듣기는 커녕 '왜 잔소리하냐'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본다. 이어지는 잔소리에 못이기는 척 얌전해지는가 싶던 학생은 몇 분 안 가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소란을 피운다. 교과서는 아예 덮어놓았다. 선생님은 학생이 몇 차례 경고도 무시하고 계속 떠들자 교탁 앞으로 불러 나무랐다.

학생이 반성할 기미를 안 보이자 선생님은 교실 뒤에서 팔굽혀펴기 30회를 하라고 시켰다. 학생은 불만어린 표정으로 "체벌은 금지된 거 아니냐"고 선생님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서울시 교육청 조례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교육과학기술부 시행령인 '초ㆍ중등교육법 개정안'에 기초한 학칙을 되새긴 뒤 "내가 근거 없이 이런 지시를 하겠느냐"면서 팔굽혀펴기를 하라고 학생을 다그친다. 짧은 신경전이 끝나고 학생이 마지못해 교실 뒤로 가 지시대로 팔굽혀펴기를 하더니 "이런 걸 시켜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자리로 돌아간다.


교과부가 지난 17일 '간접체벌'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초ㆍ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확정해 오는 3월 새학기부터 시행하도록 조만간 입법예고키로 했다고 밝히면서 연출이 가능해진 풍경이다. 교과부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개별 학교가 범위와 수위를 학칙으로 정해 운동장걷기, 팔굽혀펴기, 교실 뒤에 서있기 등 간접체벌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경기도교육청이 이미 시행했고 서울시교육청이 조만간 시행하려는 인권조례안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조례안은 신체에 고통을 주는 체벌 일체를 금지한다.

교과부 발표에 시교육청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법리상으로는 누구 태도가 더 적절할까.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사례에 등장하는 학생은 원칙적으로 선생님 지시를 군말없이 따랐어야 한다. 교과부 시행령이 시교육청 조례안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학생이 "체벌은 부당하므로 앞으로 같은 일이 안 벌어지도록 선생님을 문책해달라"고 교육청에 요구하더라도, 아무 이유 없이 학칙이 정한 범위를 넘어 체벌을 가한 게 아니라면 법리상 선생님에게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시행령은 대통령령이므로 지방자치법에 의거한 조례보다 상위규정"이라면서 "우선순위를 정하자면 시행령이 먼저"라고 말했다. 이 판사는 또 "그렇기 때문에 시행령이 일단 정해지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조례는 시행령 취지에 맞게 만들어지거나 고쳐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행령이 '경우에 따라 간접체벌은 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만큼 '어떠한 신체적 체벌도 금지한다'는 게 뼈대인 조례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는 "조례가 하위규범이기 때문에 시행령의 내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면서 "만약 조례가 시행령에 반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졌다면 시행령에 반하는 부분이 고쳐지지 않는 한 조례는 효력이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론도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체벌 문제만을 두고 보면 조례가 시행령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보긴 어렵다는 주장이다. 서울중앙지법의 다른 판사는 "지방자치법이 규율할 사항이 있고 시행령이 규율할 사항이 있다"면서 "체벌 가능 여부에 관한 내용을 시행령으로 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체벌을 허용할 지, 허용한다면 어디까지 허용할 지는 관할 자치기구 몫인데 굳이 시행령까지 동원해 세세하게 규율하는 건 다소 무리라는 것이다.


그는 또 "시행령이 체벌 여부에 관한 내용을 정한다면 그 상위법, 즉 모법의 위임을 받아서 하는 것일텐데 국가법령이 지자체가 정할 사항에 관해 개입하는 건 지자체를 두는 취지에도 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판사의 주장에 대해 서울의 한 변호사는 "지자체 존재의 의미를 고려하면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주장이지만 이 주장이 힘을 얻으려면 체벌 문제가 지자체에만 맡겨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검토 등 거쳐야 할 단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그러지 않는 한 시행령이 우선이라는 원칙은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물론 시교육청 등이 문제가 된 시행령에 위헌소지가 있음을 주장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청구하고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얘기가 쉽게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효진 기자 hjn2529@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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