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박해일은 고집이 세 보이는 배우다. 타협을 모른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기의 확신을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 옳지 않은 것에 분명히 부정의 뜻을 밝힐 수 있는 사람. 이를테면 부드러운 외면 속에 강한 내면을 갖고 있는 배우랄까.
영화 '심장이 뛴다'의 박해일을 아시아경제 스포츠투데이 취중진담에 초대했다. '심장이 뛴다'에서 박해일의 뛰어난 연기를 보고 술 한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극중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뇌사상태에 빠진 어머니에게 뒤늦게 효도하려는 양아치 청년으로 등장한다. 심장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치는 중산층 싱글맘 김윤진과 갈등하는 인물이다.
선한 겉모습과 달리 박해일의 양아치 연기는 꽤 설득력 있게 관객에게 다가간다. '심장이 뛴다'의 흥행에 그가 꽤 큰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영화에 대한 만족감인지 박해일은 '음주'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평소 술이 센 편이 아니라는 그는 기분 좋게 맥주 세 병을 슬금슬금 해치우며 대화를 채워나갔다.
-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다.
▲ 극장에 걸린 영화마다 색깔들이 독특하더라. '심장이 뛴다'는 여타 영화들과 다른지점도 있어서 관객 입장에선 메뉴판에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 음주인터뷰라 부담스러웠을 텐데 한 번에 'OK' 해서 놀랐다. 평소 술은 잘 마시나?
▲ 술을 좋아해서 조금씩 자주 마시는 편이다. '말술'로 마시는 편은 아니다. 급하게 마시고 일찍 취한다. 주량은 소주 1병 정도다.
- 술버릇이 있다면?
▲ 특별한 건 없다. '내가 더 이상 낄 자리가 아니구나' 싶으면 도망가는 정도? 너무 불편하거나 술을 더 이상 마시기 싫으면 자는 척하기도 한다. 그러다 걸린 적도 있고. 하하.
- 연말연시에는 술자리가 많은데 배우들은 어떤가?
▲ 비슷하다. 주로 작품과 관련된 사람들, 스태프들과 모임을 갖는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영화도 굉장히 이기적인 작업이다. 영화 현장이란 전문적인 스태프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로 가는 것이다. 배우건 감독이건 스태프건 이기적인 입장의 사람들이 모여 한 팀으로 간다는 건 멀리서 보면 굉장히 독특한 작업이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그렇게 추구하는 바가 각자 강한 사람들이 모여 술자리가 이뤄지니 더 색다르고 즐겁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 동료 배우들 중에서 자주 술자리를 갖는 사람들로는 누가 있나?
▲ 모두 선배들이다. 박희순 신하균 정재영 송강호 등이다. 스케줄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함께 만나기가 쉽지 않다. 운 좋게 만나게 되면 모두들 작심하고 오기 때문에 정말 즐겁고 뜻깊은 자리가 된다. 나는 막내라서 주로 선배들의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모이면 연기 이야기는 거의 안 한다. 주로 하는 건 농담 물고 늘어지기, 단점 확대시키기 정도? 입심이 가장 센 선배는 송강호와 정재영이고 신하균 선배와 나는 방청객 역할을 한다.
- '심장이 뛴다'를 찍으면서는 술자리가 거의 없었다고 들었다.
▲ 윤재근 감독과 김윤진 선배는 술을 거의 못 한다. 예전에 송강호 선배가 '반칙왕' 찍을 때 같이 마실 사람이 없어서 스태프들 붙잡고 포장마차에서 마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도 비슷한 경험이었다. 주로 조명감독님이나 연출부와 함께 마셨다.
- '심장이 뛴다' 출연을 결정한 건 언제쯤인가?
▲ 2009년 12월 31일에 윤재근 감독을 도산공원 근처에서 처음 만났다. 리필한 커피 5잔을 속이 쓰릴 정도로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만나기 일주일 전에 시나리오를 읽고 호감을 갖게 돼 만나게 됐다. 궁금했던 걸 물어보고 마음속에 있던 생각이 서로 맞는지 확인했다. 이야기가 잘 통해서 좋았다.
- 가장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은 어떤 부분이었나?
▲ 시나리오는 감독이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돼 있다.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봤을 때 스릴러가 아닌 드라마의 톤으로 정리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맞아서 출발하게 된 거다. 좀 더 깊게 이야기하자면 초고에서는 남자 대 남자의 콘셉트였다. 느낌이 많이 달랐다. 남자 투톱이면 스릴러적인 게 강하고 대립의 강도가 세질 것 같았다.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빠가 아닌 엄마로 가면 어떨까 하는 제안이 나왔다. 그러면서 김윤진 선배가 캐스팅된 거다.
- 영화는 아이를 살리려는 엄마와 엄마를 살리려는 아들의 대립을 다룬다. 이제 아빠가 됐는데 엄마 심정이 더 이해가지 않던가?
▲ 영화는 2세가 나오기 전에 찍었다. 이제 아빠가 됐지만 실은 지금까지도 부모라는 개념이 천착이 되지 않았다. 선배들이 조금만 더 지나면 달라질 거라 하는데 시기적으론 아직 변화가 없다. 이제 5개월 됐는데 교류나 소통이 적은 상태라서 그런지 부모 입장보다는 30여년간 살아온 자식 입장이 더 크다.
- 캐릭터에 전적으로 공감이 가던가?
▲ 그렇지 않았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휘도는 양아치이지만 순정도 있는 친구다. 휘도는 사회적 약자이고 힘든 상황에 처했지만 아무 데도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이다. 엄마가 쓰러지고 나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데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사람이라면 영화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내가 그 상황에 닥쳤다면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하고 믿고 간 거다.
-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 첫 촬영이다. 늘 첫 촬영이 가장 힘든 것 같다. 그때 가장 예민하니까. 이 영화는 초반에는 경쾌하게 풀어야 했다. 처음부터 힘들면 안 되니까. 첫 촬영은 수십 명의 스태프가 현장에 처음 모여 있는데 나는 행동으로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다. 그때 연기의 톤이 영화 전체를 결정짓는 것이니 늘 힘들 수밖에 없다. 이번엔 사실 쉽지 않았다. 인물은 긴장을 풀고 편하게 가야 하는데 자꾸 어깨에 힘이 들어가더라. 긴장도 많이 됐고 그래서 테이크도 많이 갔다.
- 신인감독이라 촬영이 더 힘들지 않던가?
▲ 예상보다는 더 안정적이었다. 그건 확실히 기억이 난다. 신인감독과 처음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노하우도 있으니까 시너지를 내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 kave@
스포츠투데이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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