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무수한 화제 속에 22일 개봉한 영화 '황해'가 개봉 5일 만에 전국 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황해'는 지난 2008년 초 전국 500만 관객을 모았던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이 하정우 김윤석과 다시 뭉쳐 만든 영화로 제작 초기부터 관심을 모았다.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 10달이 넘는 촬영기간 등으로 인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커졌다. 동시에 촬영현장에 관한 잡음도 한동안 영화계의 안주거리로 회자되곤 했다. '추격자'보다 한층 강하고 깊어진 드라마와 액션 때문인지 개봉 후 영화의 폭력성에 대한 찬반논쟁도 이어졌다. 연출을 맡은 나홍진 감독에 대한 억측도 잇따랐다.
개봉 3주차에 접어든 '황해'의 나홍진 감독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첫 시사가 열린 20일까지 편집된 필름의 후반작업을 마무리했던 나 감독은 '황해'의 첫 주 흥행 성적에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듯했다. 대체로 호의적인 평단의 반응과 달리 호불호가 엇갈리는 관객의 반응에 대해서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흥미로워했다. 영화 '황해'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궁금증에 대해 나홍진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 의도적으로 하정우 김윤석을 다시 캐스팅했다?
'황해'가 '제2의 추격자'로 불린다거나 자주 비교된다면 이는 무엇보다 하정우 김윤석의 조합이 반복되기 때문일 것이다. '황해'가 제작 초기단계부터 관심을 모은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추격자'의 감독과 두 주연배우가 다시 뭉쳤기 때문일 것이다.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의 영광을 재현하려 두 배우를 다시 캐스팅한 것일까.
"두 배우가 다시 출연하는 것 때문에 '추격자'와 비교된다거나 하는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보다는 제 주위 사람들만 우려를 했죠. 왜냐면 애초부터 '황해' 시나리오를 두 배우에게 드리면서도 캐스팅할 의도는 없었거든요. 그냥 시나리오만 드린 겁니다. 물론, 이 캐릭터는 이 분이 맡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 정도는 있었죠. 김윤석 선배가 '나, 면가 할게'라고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하정우씨까지 결정이 된 겁니다. 중요한 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 뿐 '추격자'의 이점을 다시 끌고 들어오려고 한 건 전혀 아니었습니다."
◆ 나홍진 감독은 여성에 대한 반감이 있다?
나홍진 감독의 두 영화 '추격자' '황해'는 모두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그 속에서 여성 캐릭터는 늘 주변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추격자'의 여자들은 피해자들이고, '황해'의 여자들은 남자들을 불행으로 내몬다. 이에 일부 관객들은 "나홍진 감독은 여성에게 학대당한 적이 있나"라는 억측을 내놓기도 했다.
"저도 그런 댓글을 읽은 기억이 나요. 그렇게 느끼신다면 어쩔 수 없죠. 제게 그러한 성향이 있어서 영화 속에 드러났나 봐요. 하지만 '황해'에선 여성을 그렇게 보이게끔 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영화를 준비하다 보면 몇 가지 우려가 되는 부분들이 보이곤 하는데 '황해'를 준비하며 여성 캐릭터에 대한 오해가 있을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단지 남자 세 명의 이야기를 그리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2시간 36분이라는 시간은 영화가 담고 있는 걸 다 보여드리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그 안에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강화시키다 보면 그 외의 요소들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되는데 그러한 집중과 선택의 과정에서 생겨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다 보니 자연히 남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내용들이 담길 것이고, 여자 이야기라면 반대의 경우가 되겠죠. 여성 비하라고는 하지만 사실 남자들을 더 비하시킨 것 같지 않나요?"
◆ 나홍진 감독은 잔인한 영화를 좋아한다?
나홍진 감독의 두 영화 '추격자' '황해'는 모두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다룬다. 두 영화 모두 극도의 긴장과 불안을 조성한 다음 이를 해결한다. 나 감독의 '긴장과 불안'을 연출하는 재능은 국내 어느 감독보다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다. 문제는 장면 묘사가 잔인하다는 데 있다. '황해'가 '추격자'보다 더 잔인한가? 나홍진 감독은 잔인한 영화를 선호하나?
"어머니가 '추격자'를 보시고 나서는 '나 때문에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가 하드보일드 장르를 정말 좋아하셨어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셨는데 작품성보다는 자극적이고 센 내용의 작품을 좋아하셨거든요. 그게 영향을 미쳤나 생각도 해보긴 했는데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추격자'를 보시고 나선 '뭐가 잔인해' 하셨던 어머니가 '황해'를 보시고 나선 '뒷골이 땅기더라'라고 하시더군요. '내가 뒷골이 땅기면 진짜 센 거다'라시면서요. 이 영화의 폭력 신에는 어떤 주파수가 있나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사실 저는 잔혹한 장면을 잘 못 봅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면서는 눈을 감은 게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황해'가 잔인하게 느껴진다면 상황들이 긴장감을 배가시키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100억원짜리 상업영화, 해피엔딩은 없다?
눈물 짜는 신파가 아니라면 상업영화는 대개 해피엔딩의 구성을 갖는다. 누군가를 죽고 죽이는 액션 스릴러 장르의 영화라면 이 같은 불문율은 더욱 분명해진다. 주인공은 살고 악당은 죽는 엔딩이야말로 카타르시스의 기본 아닌가. '황해'는 대담하게 해피엔딩을 거부한다. 나홍진 감독은 왜 이런 결말을 택했을까.
"구남(하정우 분)은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부인 때문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가 살인 현장에서 손가락을 자르는 행동이 어떻게 용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대가가 죽음이 아닐 수는 있겠으나 지금의 엔딩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사람도 결국 자신이 죽게 될 것임을 알게 되죠. 그게 어떻게 보면 타지로 나온 이방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결말의 충돌이 더 무겁게 느껴지고 착잡한 기분이 들기도 하겠지만 이것이 또 그들의 삶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현실이기도 한데 거짓을 만들 수는 없었어요. 현실 속의 그들이 겪는 이야기를 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배신을 겪고 자괴감에 빠지고 그러다가 불법체류자가 되고 여기저기 도망다니다가 만신창이가 된 채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생각도 못하게 되는 이방인들이죠. 밑바닥으로 떨어져 않은 모습들이 어떤 은유를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 신은 현실 혹은 상상?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서 출발하는 '황해'가 가장 모호해지는 순간은 모든 사건이 종결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에 등장하는 열차 도착 장면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플랫폼에 내리는 것은 구남의 아내. 비현실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호한 사건의 실체는 무엇일까?
"결말이 비극으로 끝난 것은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바라보고 접근하려 했던 데서 나온 것입니다. 비록 결말은 비극으로 마침표가 찍혔지만 그 안에는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볼 것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상이라고 믿으시는 분들도 있겠죠. 기차에서 내린 여인을 보면서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는 관객의 몫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이 끔찍한 현실 속에서 그 여자라도 살아 돌아왔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 시간이 필요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시간 반 동안 현실을 지켜봐 왔는데 그 안에는 희망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고 싶은 분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렇게 열어놓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 kave@
스포츠투데이 사진 이기범 기자 metro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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