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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수퍼 패션, 수퍼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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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수퍼 패션, 수퍼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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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든 쉽게 반하는 편이다. 내 기호와 취향에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을 맞닥뜨리면 이리저리 잴 것 없이 바로 반해버린다.


쉽게 반하는 만큼 감정을 속이지 못하고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편이라서 좋아하는 남자가 있을 땐, 그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을 정도다. 굳이 고백할 번거로움이 줄어드니까 나쁠 건 없다.

그런가 하면 반해버린 영화 장면에서는 장르를 불문하고 일단 울어 버린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펑펑 울며 나오다 마주친 친구가 "넌 무슨 영화를 봤길래 그렇게 슬프게 울어?"라고 물었을 때 이런, 같은 영화였다. 의아한 친구 눈에 비친 나의 그로테스크하게 번진 마스카라가 머쓱해진다.


카페에서 혼자 간단하게 허기를 달래려고 베이글을 주문한다. 잠시 뒤 베이글과 함께 나온 크림치즈의 은박 뚜껑 색이 그날 입고 나온 블루 그레이 원피스의 색과 아주 비슷하다. 그럼 그게 그렇게 좋다고 혼자 신나서 웃는다. 웃기만 하면 다행이지.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하늘높이 디카를 들고 최대한 내 시각처럼 나오도록 사진을 찍는다. 찍은 사진을 확인하며 또 혼자 웃는다. 베이글 하나 먹을 뿐인데 감정이 수백 번 교차한다.

[마니아] "수퍼 패션, 수퍼 라이프!"


쉽게 반하는 건 사람이기도 하고 유독 애틋한 나의 일상이기도 하며 시각적인 모든 것이기도 하다. 거실에서 분주하다가 안방에 들어서서 3초나 지났을까.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TV에서는 세상 가슴 아픈 공익광고가 흐르고 있다. TV를 보던 동생이 '이 언니 왜 이러나'싶은 눈으로 황당하게 쳐다본다. 멋쩍어져서 주책없는 눈물을 닦고 뒤늦게 언니의 위용을 뽐내며 다시 거실로 나간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반하고 빠져버리는 내가 일하는 분야는 패션이다. 패션 디자이너였고 일러스트도 그리며 일상적인 사진도 찍고 웹사이트도 디자인하다가 지금은 패션 트렌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쉽게 반하니 세상엔 호기심 투성인지라 이일 저일 건드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다행히 지금 하는 일이 나의 그런 기질에 잘 맞는 일이다.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인 6살 때부터 꿈꿔온 분야가 패션이다. 학창 시절 내내 장래희망은 죽 '패션 디자이너'였고 자연스럽게 택한 전공도 패션 디자인이었으며 입학과 동시에 시작한 일들도 패션 관련 일이었다. 그렇게 기억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패션과 함께 보내다 보면 그 패션이라는 것도 나란 사람의 일상으로 한번 여과되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가을ㆍ겨울에는 레오퍼드를 주목하라!' ' 뉴 스타일, 남자친구의 청바지 뺏어 입기' 같은 식의 타이틀을 보면 어쩐지 뒷목이 간질간질해온다. 꼭 그렇게 선동해야 '맛'은 아닐 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패션'이란 뭔가 어깨도 좀 펴야 할 것 같고, 눈빛도 괜히 한번 쏘아줘야 할 것 같은 어색함이 있는 게 당연할걸까.


하지만 편하게 생각해 보면 어느 동네 아줌마에게도 그 아줌마만의 확고한 패션 스타일은 존재한다. 어린이들도 양말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등교를 거부하는 게 패션이다. 거창할 것 없다. 패션이란 것도 결국 개인의 주관적인 기호 중 하나일 뿐이다.


큰 딸이 패션을 한 지도 꽤 지났건만 나의 엄마란 분은 쇼핑할 때 절대 딸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아니하신다. 그것뿐이면 다행이게. 아예 매장에 들어서자 마자 모르는 아가씨랑 오기라도 한 것처럼 '쌩~'하니 등을 돌려 당신 홀로 '득템'스피드를 올리신다.


어릴 땐 그게 은근히 서운하더니 이제는 나도 '엄마의 확고한 패션 취향'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중이다. 엄마는 젊은이들 가득한 유니클로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원하는 핏의 팬츠를 정확히 찾아내시는 분이며 여자 사이즈 30인치가 나오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하는 자주적인 분이시기도 하다.


그런 엄마의 딸인 나는, 백화점도 아닌 대형 마트 생활용품 코너에서 간단한 장을 보면서도 설렌다. 새로 나온 초콜릿이 똑같이 쪼르르 진열돼 있는 것에 신나서 혼잣말을 하며 이 섹션 저 섹션을 휘저으며 같은 컬러군단 발견에 집중한다.


공산품은 언뜻 보기엔 무뚝뚝해 보여도 같은 종류가 여럿 모여 있으면 그 귀여움이 한층 되살아나는 법이다. 처음은 담백하지만 곱씹으면 스윗하다. 몇 번 재미 들이다보면 길을 가다 빈 깡통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걸 봐도 흐뭇해진다. 숨 쉬는 내내 보고 느끼는 것들이 모이면 그게 바로 패션라이프. 제대로 패션이고 제대로 일상인 수퍼 패션 수퍼 라이프(SUPER FASHION SUPER LIFE).


김 씨는 패션업체 한섬 및 쟈뎅드슈에뜨 비쥬얼 디자이너를 지낸 바 있으며 지금은 패션트렌드 컨설턴트 활동 및 블로그 SUN's 프라이빗 패션라이프(blog.naver.com/rohmplay)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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